인생의 절반, 정의당을 떠난 ‘청년 대변인’…“비명계보다 더 침묵했던 현실”[이런정치in]

이재랑 전 정의당 대변인.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2023년 11월 28일,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탈당을 선언했다. 2022년 12월 19일, 청년 몫의 대변인으로 발탁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1992년생인 이 전 대변인은 올해 만 31살이다. 만 17살 때인 2008년,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신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며 정당정치에 처음 발을 들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인생 절반을 함께한 진보정당을 떠났다.

2008년 5월, 이 전 대변인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울산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 만이다. 중학교 시절 독서모임을 하면서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옮겼다.

이 전 대변인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입시 교육 자체에 거부감이 컸다”며 “매일 밤 10시까지 야간학습을 하고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이른바 ‘연고대반’을 꾸리고 밤 12시까지 입시 교육을 시키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기는 것을 넘어 대안을 찾고 싶었다. 어른들과도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스스로도 떳떳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싫다’는 이유보다 ‘다른 걸 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시켰다. 나름의 ‘향후 계획’을 정리해 부모님과 선생님을 찾아갔다.

이 전 대변인은 “무의미한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검정고시를 통해 조금 더 빨리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다”며 “입시교육 기간을 줄이겠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꼼꼼히 계획을 세워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했고, 어른들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고 말했다.

고 노회찬 전 의원과 이재랑 전 대변인.

이 전 대변인이 고등학교를 자퇴할 시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움직임이 전국에서 꿈틀거릴 때다. 이 전 대변인이 자랐던 울산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자퇴 직전, 이 전 대변인은 울산 남구의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열렸던 촛불집회 현장을 찾았다. 이후 울산대공원을 중심으로 규모가 커졌던 촛불집회에 자주 나갔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나이를 떠나 ‘학교 밖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고등학교를 자퇴하며 진보신당(정의당 전신)에 가입했다.

이 전 대변인은 “고등학교 자퇴를 하기 며칠 전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열렸던 촛불집회에 궁금해서 가본 이후 촛불집회에 나가면서 여러사람들을 만났다”며 “그해 4월 총선이 있었는데 KBS 다큐멘터리에서 노회찬 의원이 낙선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자퇴를 했고, 그 기념으로 진보신당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 전 대변인은 고등학교 대신 울산 효문사거리 쪽에 있던 진보신당 당사로 등·하교를 했다. 당원들은 아직 고등학생 나이인 이 대변인을 신기해하면서도 따뜻이 대해줬다. 그렇다고 어린애 취급을 한 것은 아니다. 울산시당 사무처에서 청년위원장을 맡으며 기관지 제작에 손을 보탰다.

이 전 대변인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입당하니 당원들도 신기했던 거 같다”며 “행정 업무를 보조하는 것에서부터 청년 당원들과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의 생활을 하며 당을 학교로 생각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자퇴한 다음 해인 2009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재수를 해서 2011년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과 당원 활동을 이어가던 이 전 대변인은 첫 번째 ‘정치적 갈림길’에 섰다. 2011년,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과 통합진보당 출범을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진보신당 탈당파도 참여했다. 이 전 대변인은 자신의 학교였던 진보신당을 떠나지 못하고 이른바 잔류파에 남았다.

이 때부터 이 전 대변인의 정당 활동은 힘이 빠졌다. 사실상 당비만 납부하며 공식적인 정당 활동엔 소극적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논술학원 강사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던 이 전 대변인은 2018년 충격에 빠졌다. 당이 학교였던 이 전 대변인에게 선생님과 마찬가지였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사망했다. 더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진보정치에 다시 힘을 보태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전 대변인은 “노회찬 대표께서 떠나셨을 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진보정당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면면들이 머릿속에 부단히 스쳐 지나갔고, 당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손에 박힌 가시마냥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고 말했다.

이재랑 전 대변인.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대변인은 정의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김창인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조국 사태’에 대한 정의당 내의 의견은 갈렸다. 당내 청년들의 비판의식은 당 주류 인식과 부딪히며 갈등이 빚었다. 당시 조국 사태에 강한 문제의식을 있던 김 위원장과 함께 당내 청년들의 세력화에 나섰다.

이 전 대변인은 “2019년에 또래인 김창인 위원장을 만났고 조국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같이하며 당내에서 우리의 주장을 세력화 시키려고 노력했다”며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그룹을 꾸리고 정의당의 청년 정파를 만드는데 열심히 활동했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에서 김 위원장은 낙선했다. 이후 구성된 청년정의당에 김 위원장이 대표를 맡았다. 김 위원장은 청년정의당 대변인직을 이 전 대변인에게 제안했다. 청년정의당은 정당법상 별도의 정당이 아니라 정의당 내부 조직이다. 사실상 정의당 대변인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21대 총선 이후 학원 강사로 생활하며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이 전 대변인은 다시한번 결단이 필요한 갈림길에 섰다.

이 전 대변인은 “총선 이후에는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필요했고, 향후 정치 활동도 김 위원장과 같이 뜻이 맞는 정치인을 후원하는 간접적인 활동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학원 강사로 경제적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된 상황에서 대변인직 제안을 받고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 19일 이 전 대변인은 정의당 대변인으로 발령을 받았다. 현역의원 6명을 보유한 제3정당이었지만, 정의당의 존재감은 더욱 줄어들고 있었다. 과반의석을 보유한 제1야당과 국정운영 지지율이 정체된 여당은 극한의 정쟁만 거듭했다. 거대 양당의 대립 정치로 ‘정치 혐오’가 사회에 팽배했고, ‘정치 실종’이라는 말까지 횡행했다. 제도권 정치를 틀어쥔 거대양당 사이에서 정의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전 대변인은 “가르치는 일에 종사한 경험으로 말과 글을 다듬는 데에 그나마 얼마 없는 재주가 있어, 막중한 자리에 감히 응하게 됐다”며 “당이 어렵다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왜 진보 정당을 하려고 했는지 되돌아보고 우리가 가진 조막만한 힘이라도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에 도움된다면 말과 글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 한계가 컸다”고 말했다.

새로운선택에 합류한 이재랑 전 대변인(맨 왼쪽).

이 전 대변인은 11개월 정도를 정의당 대변인으로 지냈다. 사퇴가 아닌 탈당으로 대변인직을 내려놨다. 이 전 대변인은 정의당의 대표적인 한계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사라진 ‘독립 노선’과 지지세력만 바라보는 ‘외눈박이 정치’다.

사라진 독립 노선은 사실상 민주당 이중대로 전락한 정의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정의당 만의 독립적인 서사가 존재하지 않고, 독립적인 서사를 외치려는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 당하는 현실이다. 이 전 대변인은 당의 대변인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1심 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등에 비판적인 브리핑을 제지당하며 이같은 현실을 생생히 겪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의 경우 당론과 마찬가지로 방탄 국회를 끝내야 한다는 취지의 대변인 논평을 준비했지만,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당 지도부의 분위기에 논평을 못한 것이 부끄럽다”며 “조국 전 장관의 1심 결과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준비했는데 비슷한 이유로 당에서 브리핑을 사실상 막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어떤 현안에서든 민주당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당내 팽배했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해선 비명계보다 더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이 당 대변인에게 허락된 최대치였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변인은 정의당 입법권에 대한 회의감도 컸다. 정의당이 확보한 입법권이 과연 무엇을 위한 입법권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입법권은 결국 지지층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결과만 되풀이했다는 것이 이 전 대변인의 문제의식이다. 다른 목소리들과 대화하고 토론을 거치며 대안을 마련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 자신들이 대변해온 기존 목소리만 반복하며 정의당이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대변인은 노란봉투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도부와 의원들이 민주노총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던 당내 상황을 대표적인 외눈박이 정치로 꼽는다.

그는 “당의 정치는 모순이나 의견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된 상황”이라며 “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있어도 결국 특정 지지층이 원하는 상징법안이라는 논리가 모두 묵살시켰다”고 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