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라·박근테·최재혁 등 8명 선발
최종 1인은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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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서울시향 지휘 펠로십에 참여한 최재혁 지휘자와 얍 팝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슨 음이 틀렸나? 두 번째 노트는 왜 그렇게 했지? 어떻게 고치고 싶나?”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레틀과 한 무대에 서고, 취리히 톤할레ㆍ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젊은 지휘자 최재혁(31)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만남. 헝가리 작곡가 벨라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마지막 악장의 연주 내내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의 눈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 지난 26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2025 서울시향 지휘 펠로십’ 리허설 현장에서다.
연주를 마치자 스무고개를 방불케 하는 ‘질문 공격’이 시작됐다. “방금 연주가 만족스러웠냐”며 자체 평가를 요구하는 거장의 질문에 최재혁은 가만히 곱씹은 뒤 “소리가 너무 부드러웠다”고 신중히 말한다. 젊은 지휘자의 답변에 “바로 그거다”라며 눈을 빛냈다. 츠베덴 감독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지휘자들의 실수나 음악 해석에서 간과한 부분을 바로바로 지적했다. “교통경찰처럼 팔을 휘젓지 마라”, “오케스트라가 너를 지휘해선 안 된다. 네가 악단을 지휘해야 한다”는 직언도 나왔다.
최재혁 지휘자는 “(츠베덴 감독은) 칭찬을 먼저 하고 (지적을) 돌려서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어떤 것을 고치면 좋겠다고 말한다”며 “질문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굉장히 효율적이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츠베덴 감독의 질문 3대장은 ‘왜(Why), 무엇(What), 어떻게(How)’. 거장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위축될 법도 하지만 지휘자들은 차분히 자신의 지휘를 돌아봤다.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츠베덴 감독의 ‘창의적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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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서울시향 지휘 펠로쉽에 참여한 신주연 지휘자와 얍 팝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뿐만 아니라 지휘자와 단원 사이의 상호 작용, 포디움에서 주도권을 잡는 법, 악기 소리를 바로잡는 다양한 테크닉과 지휘 동작에 대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이어졌다. 특히 그는 “지휘자는 각 악기들의 연주법을 정확하게 알고 준비해야 한다”며 “연주가 정확히 되고 있는지를 눈과 귀로 확인하고, 준비하면서 상상한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즉시 명확하게 전달해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라(33ㆍ전 네덜란드 라디오필 부지휘자) 지휘자는 “모든 지휘자 성향이 다른 데도 키포인트를 짚어주고, 악기 주법까지 세세히 알려줬다”며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상상력까지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최재혁 지휘자는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예측하고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번 지휘 펠로십에 참여한 지휘자들은 츠베덴 감독에 대해 ‘집요한 완벽주의자’, ‘디테일 끝판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최재혁은 “츠베덴 선생님은 미세한 음 이탈까지도 즉각적으로 고쳐지길 원하고 연주자, 지휘자에게도 이 점을 기대한다”며 “요리로 치면 소금을 2g 넣어야 할 때 선생님은 2.000000000g으로 정확히 맞추는 굉장한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실제로 츠베덴 감독은 악단의 ‘완벽한 조율’을 위한 마지막 단추를 디테일이라고 본다. 그는 “서울시향처럼 훌륭한 악단은 굉장히 어려운 버르토크의 곡도 이미 잘 연주할 수 있지만, 완벽히 조율해 내는 것은 작은 디테일의 차이다”며 “지휘자는 아주 작은 면까지 조율하고, 모든 악기의 기술적인 면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향의 지휘 펠로십엔 총 59명이 지원, 8명이 선발됐다. 선정 기준은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지 등이었다. 차세대 지휘자들은 25~27일 리허설을 진행, 최종 우수 참가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지휘자는 국내 악단 중엔 시도한 적 없는 파격적 특전이 주어진다. 오는 28일 예정된 서울시향의 특별 공연 무대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 차기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선임된다.
츠베덴 감독은 리허설을 마친 뒤 이번 펠로십 취지에 대해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남기고 싶은 유산”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특히 그는 절친한 사이인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츠베덴 감독은 한국에서는 물론, 스위스 그슈타트메뉴힌 페스티벌에서도 지휘자 양성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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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그는 이번 펠로십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작업할 때 중요한 3단계 과정에 중점을 둬 개별지도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곡을 멈추는 것이 1단계, 멈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2단계, 더 나은 연주를 개선하는 것이 3단계”라고 설명했다.
리허설 내내 츠베덴 감독이 강조한 것은 지휘자가 갖춰야 할 소양과 태도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지휘자는 음악의 대사’(ambassador)라고 말한다”며 “지휘자는 자신을 작곡가라고 생각해선 안 되고,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휘는 강력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라며 “지휘자의 권위와 권력은 더 나은 연주를 할 수 있는 방법과 지식을 아는 데에서 나온다”고 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휘자가 태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수련하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고, 지난한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츠베덴 감독은 “결코 서두르지 마라, 페라리와 같은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면 주변을 볼 수 없다”며 “여유를 갖고 이 길을 가야 하며, 커리어를 좇지 말고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집중하면 커리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지휘의 기쁨을 항상 간직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흘간의 펠로십은 8명의 참가자들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펠로십에 참여한 박근태(34, 베를린 노이에필 수석 지휘자) 지휘자는 “감독님은 ”원하는 사운드의 음악이 100%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고들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며 “집요할 정도로 파고들어 원하는 음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해준 점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최재혁 지휘자는 “젊은 지휘자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참가비 없이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명지휘자)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가 손흥민에게 축구를 배우는 경험과 같을 것”이라며 “엄청난 수준의 완벽주의를 목격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현 과정에 이르는 이상적인 부분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며 나도 (츠베덴 감독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소감을 들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