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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에미리트(UAE)가 다음달 1일부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이 됐던 중동 석유 통제력이 약화되고 중동 국가들이 경제·외교·안보에서 ‘각자도생’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사진 속 한 남성이 OPEC 로고를 담은 깃발 뒤를 지나가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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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간 전쟁 와중에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 탈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중동이 경제·안보 전반에서 ‘각자도생’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두 달 가까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사이, 걸프 산유국들까지 미국 중심 안보·에너지 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UAE 정부는 28일(현지시간) 국영 WAM 통신을 통해 다음달 1일부터 OPEC과 OPEC+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UAE는 “장기 전략과 경제 비전, 국내 에너지 생산 투자 확대를 반영한 결정”이라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미래 지향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산유국 질서에서 이탈하려는 사실상의 ‘독립 선언’으로 보고 있다. 특히 걸프 지역 OPEC 대표들 사이에서는 이번 탈퇴가 추가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우디 주도의 생산 조율 체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균열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UAE는 사우디와 함께 OPEC 내에서 ‘유휴 생산 능력(spare capacity)’을 보유한 핵심 국가였다. 공급 충격 시 증산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아온 국가가 빠지면서 카르텔의 시장 관리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자재 데이터 기업 케플러의 호마윤 팔락샤히 선임 분석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OPEC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라며 “OPEC이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결정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걸프 원유 수출이 장기간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UAE는 다른 걸프 산유국과 달리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푸자이라 수출항을 보유하고 있다. 경쟁국들의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 OPEC 쿼터를 벗어나면 생산과 수출을 독자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구조다.
안보 측면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전쟁 기간 이란은 2800대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을 UAE에 집중 발사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UAE 내부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방어를 지원한 반면 아랍권의 대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불만이 확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스대 베이커 연구소의 크리스티안 코츠 울릭센은 “이번 전쟁이 기존 동맹 관계의 한계를 확인시켜줬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과 이란 간 협상 교착과 맞물려 중동 전체 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분쟁은 약 두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추가 협상 일정조차 확정되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양측 모두 핵심 요구를 유지하며 타협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미국이 외교에 진지한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제안을 “불충분하다”고 평가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OPEC 내부 구조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셰일 오일 확대 이후 OPEC의 시장 지배력은 약화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OPEC+’ 체제가 구축됐지만 최근에는 전쟁 변수에 주도권을 내줬다는 불만이 제기돼왔다.
또한 UAE는 과거에도 OPEC 탈퇴를 검토해온 ‘이탈 가능성 높은 회원국’으로 꼽혀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UAE가 할당량보다 하루 20만~30만 배럴을 초과 생산해왔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낮은 유가에서도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 역시 독자 노선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각자도생’으로 설명한다. 위기 시 동맹보다 자국 생존을 우선하는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를 “셀프 헬프 시대의 도래”로 평가하며 “신뢰와 동맹이 약화되면서 각국이 개별 생존 전략을 고민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안보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은 최근 상호방위협정을 맺고 군사 협력을 강화했다. 한쪽이 공격을 받을 경우 함께 대응하는 구조로, 기존처럼 미국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안보를 보완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의 확실한 군사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파키스탄과의 협력을 통해 일종의 ‘핵 억지력’을 간접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터키 등 다른 수니파 국가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안보 협력 체계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중동 국가들이 서로 묶여 독자적인 안보 구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위기 상황에서 외부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방어 체계를 구축하려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변수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사이 중국은 경제 협력과 외교 접촉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파키스탄 외교 라인이 주요 협상 이후 곧바로 중국을 방문하는 등 협력 강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중동과 주변 지역에서 미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포함한 다극 구조로 힘의 균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