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빨래하러 태어난거 아냐”…결혼 거부하는 中 여성들
결혼사진 파쇄·반지버리기 기념촬영 등 이혼 정리 서비스도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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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사진 파쇄 전문 업체에서 고객의 결혼사진을 파쇄하는 모습이다. 얼굴이 스프레이로 가려진 결혼사진이 산업용 파쇄기에 들어가고 있다. [블룸버그 캡처]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중국 베이징에서 웨딩플래너로 일하는 애비 가오는 한때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 58대를 동원한 초호화 결혼식 행렬을 연출했다. 결혼식장을 장미 3만5000송이로 가득 채우고, 수백달러짜리 고급 마오타이주를 연회장 테이블마다 올려놓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웨딩 사업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아동 생일파티 사업까지 함께 하고 있다. 결혼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가오는 “시장 상황이 완전히 무너졌다”며 “지난해 웨딩 고객은 100팀 정도였는데 2012년에는 거의 2000팀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그 행복이 꼭 결혼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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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커플들이 대규모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AP] |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혼인 건수는 지난 10년 동안 감소세를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약 21% 급감하며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인구 감소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혼 산업 역시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상하이 컨설팅업체 다쉐컨설팅에 따르면 중국 웨딩 산업 규모는 2019년 5240억달러에서 현재 4000억달러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이혼 산업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결혼사진과 웨딩드레스, 웨딩앨범 등을 전문적으로 파쇄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이혼한 부부가 웨딩사진을 찢거나 반지를 버리는 장면을 촬영하는 ‘이혼 사진 촬영’ 서비스도 유행 중이다.
베이징 인근에서 관련 사업을 하는 류웨이는 “처음에는 한 달 몇 건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수십건씩 주문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혹시 마음이 바뀔 가능성에 대비해 일주일 정도 숙려 기간을 거친 뒤 사진을 파쇄한다. 업체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얼굴을 스프레이로 가린 뒤 산업용 파쇄기로 웨딩사진을 없앤다. 요청하면 파쇄 영상을 따로 보내주기도 한다.
류웨이는 “누군가에겐 단순한 폐기 작업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인생의 한 시기를 정리하는 의식 같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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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RF] |
중국 정부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 출산 장려금, 이혼 숙려기간 도입 등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흐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기준 1.0을 밑돌 것이라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는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인 한국(0.73)보다는 높지만 일본(1.22)과 함께 심각한 인구 감소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불혼불육(不婚不育·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경제 둔화 속에서 치솟는 결혼 비용과 주택 구매 부담, 신부 측에 거액의 예물을 줘야 한다는 압박이 젊은 세대를 결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에이다 리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결혼 감소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라며 “높은 비용과 청년 실업, 경기 둔화, 전통적 가족관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천단공원에서는 지금도 이른바 ‘중매 시장’이 열린다. 부모들이 자녀 배우자를 찾기 위해 일주일에 네 차례 모이는 곳이다.
공원 담벼락에는 미혼 남녀의 나이와 학력, 연봉, 키, 몸무게는 물론 베이징 호적 보유 여부와 집·차 소유 여부까지 적힌 종이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는 사람”, “집이 있거나 집을 살 능력이 있는 사람” 같은 조건도 적혀 있다.
특히 여성 구혼 광고가 남성보다 더 많다. 외신은 여성들이 20대 안에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더 크게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는 학군 좋은 지역 아파트 1㎡ 가격이 평균 연봉보다 비싼 경우도 흔하다. 여기에 미래 일자리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결혼 자체가 사치”라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16~24세 청년 6명 중 1명꼴로 실업 상태다.
사회문화적 변화도 크다. 일부 중국 여성들은 전통적인 돌봄 역할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SNS에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홍슈에서 활동하는 한 여성 인플루언서는 “가족을 위해 하루 세 끼를 차리고 바닥의 양말과 장난감을 치우며 살고 싶지 않다”며 “나는 남자 빨래를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페미니즘 확산과 여성 경제력 향상이 중국인의 결혼관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의 판왕 교수는 “여성들이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하면서 남성 의존도가 낮아졌고, 자연스럽게 결혼 필요성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에서는 ‘1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인 가구를 겨냥한 가전제품과 여행상품, 소비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신고 건수는 610만건으로 1986년 공식 집계 이후 가장 적었다. 이는 2013년 정점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2023년 기준 30세 인구의 약 30%가 미혼 상태였는데, 10년 전에는 15% 수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