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의 선구자’, ‘배트맨의 아버지’… 마이클 유슬란(64)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30여년 전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배트맨’ 만화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그는 ‘배트맨’ 전 시리즈는 물론, 확장판 ‘다크나이트’ 시리즈까지 성공시키며 꿈을 이뤘다. 그 덕분에 슈퍼히어로 만화가 할리우드에서 가능성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배트맨을 사랑했던 소년’(최근 그가 내놓은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에 불과했던 유슬란은 이제는 할리우드의 성공한 제작자로 세계를 돌며 강단에 서고 있다. 최근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성공하는 콘텐츠의 법칙’을 주제로 진행하는 강연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콘텐츠코리아랩에서 그를 만났다. 배트맨 캐릭터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온 그는 “셔츠가 멋지다”는 말에 “고맙다”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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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
▶진지한 배트맨에 ‘미쳤다’ 비난도…=마이클 유슬란은 다섯살 때부터 배트맨을 비롯한 슈퍼히어로 만화의 광팬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차고엔 천장까지 만화책이 들어차 있어 차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1966년 1월 어느 날, 소년 유슬란은 들떠 있었다. ‘배트맨’ TV 시리즈가 첫 방송을 앞두고 있던 까닭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을 보던 그는 기겁했다. TV 속 배트맨은 우스꽝스러운 광대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유슬란은 비장하게 다짐했다. ‘언젠가는 진정한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주인공)이 고담시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그 역시 지하실 한 구석에서 배트맨을 성공적으로 부활시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79년, 유슬란은 20대의 나이에 배트맨의 판권을 사들였다. 그는 판권을 일단 손에 넣으면, 영화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물론 오산이었다. 할리우드의 모든 스튜디오가 그의 제안에 손사래부터 쳤다. 배트맨을 어둡고 진지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최악의 아이디어’, ‘미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오래된 TV 시리즈를 영화로 만드는 사례가 전무했다. 게다가 슈퍼히어로 주인공의 블록버스터는 당시엔 비웃음을 살 만한 허무맹랑한 아이디어였다.
유슬란이 거기서 물러났다면 걸작 ‘배트맨’은 탄생하지 못했을 터. 그는 ‘내가 고집을 부리는 건가’ 흔들리면서도, 스스로에게 ‘나 자신을, 내가 하는 일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수 차례 던졌다. 결국은 자신이 생각한 길이 맞다는 결론을 냈다. 그렇게 할리우드 제작사를 전전하며 10년을 보냈고, 마침내 팀 버튼 감독과 의기투합해 ‘배트맨’(1989)을 내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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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
▶‘천재’ 감독들 만나 꽃 핀 슈퍼히어로 영화의 꿈=유슬란은 익숙한 영웅을 혁신적으로 그려내지 못한다면, 영화화하는 의미도 승산도 없다고 생각했다.
팀 버튼은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웨인이 실존 인물처럼 인지돼야 그가 일상을 등지고 조커와의 싸움에 나서는 것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희극인 출신 배우 마이클 키튼이 주인공 물망에 올랐다. 당시 유슬란은 ‘까무라칠 뻔’ 했다. TV 시리즈의 악몽이 떠오른 까닭이다. 이에 팀 버튼은 ‘키튼이 키가 작아서 걱정이라면 커보이게 하면 되고, 근육질이 아닌 게 문제면 의상으로 보완하면 된다. 캐릭터 자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마이클 키튼은 원작 이상으로 입체적인 배트맨을 완성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들이 ‘다크나이트’를 더이상 ‘만화영화’가 아닌, 한 편의 훌륭한 ‘영화’로 인정하게 만든 인물이다. 유슬란은 “만화책으로 만든 영화가 무게감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 자체가 큰 성취”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리즈 3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누구에게나 영웅적인 면모가 있고, 헌신할 준비만 돼 있다면 누구나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담았다. 도덕적 선택에 대한 진지한 질문까지 던졌다.
“아직도 만화를 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꼭 봐야해요. 9.11 테러 이후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고 인간의 도덕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새로운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죠. 오늘날에도 영웅이 필요해요. 미국엔 이제 케네디와 같은 정치인도 없고, 우주 프로젝트도 종료돼 우주인도 없어요. 영웅에 목마른 이들에게 슈퍼히어로 영화가 새로운 신화를 제공하는 셈이죠.”
▶“내게 슈퍼히어로는 어머니·선생님”=유슬란은 만화책 광에서 성공적인 할리우드 제작자로 성장한 비결로 우선 ‘열정’을 꼽았다. 지금도 주 7일, 하루 12~20시간을 일할 수 있는 건, 이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그를 믿고 지지해준 주위 사람들의 도움도 컸다. 그에게 슈퍼히어로는 어머니와 선생님이었다.
한 때 미국에선 만화책이 청소년 범죄의 원인이라는 오명을 쓴 채 푸대접을 받았다. 유슬란의 어머니는 ‘만화책은 나쁜 게 아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줄 것’이라며 그의 만화책 사랑을 응원했다. 다만 다른 책이나 잡지, 신문 등도 읽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덕분에 유슬란은 네 살이 되기도 전에 만화책을 읽으며 글을 깨우칠 수 있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만화책 ‘엑스맨’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됐다. 선생님이 유슬란의 만화책을 낚아채자, 주위에선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여러분이라면 웃지 않을 거다. 유슬란은 우리 반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글을 쓰고 어휘력도 풍부한 친구다. 아마 만화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 여러분도 만화책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당시 일화를 전하며 그는 “슈퍼히어로는 진짜 있다. 그건 우리 선생님들”이라고 감회에 젖었다.
친구들도 유슬란의 조력자였다. ‘배트맨’ 판권을 사기 위한 돈은 친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배트맨 영화의 성공을 점치고 돈을 내놓은 건 아니다. 그저 ‘마이클 유슬란’이란 사람에게 투자한 것이었다.
주위의 신뢰와 지원 덕분에 그는 만화책과 미니 시리즈 등을 쓰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새롭고 대담한 것을 시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눈치를 봐요. 그 과정에서 분명히 난관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기회도 발견할 수 있어요. 저는 그 기회에 집중하는 편이죠. 슈퍼히어로와 같은 콘텐츠는 정치나 종교,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세계인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에서도 차별화된 콘텐츠를 발굴, 세계에 알리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