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청년 좀먹는 구조…“불법추심 명의인 복수 계좌 동결해야” [사기공화국의 민낯]

대포통장 명의자도 사회 초년생 대다수
피해자가 졸지에 가해자·공범되기도 해

불법사금융 활용 계좌 즉시 차단 본격화
고객 확인 강화시 금융사 면책권도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최근 불법사금융 계좌에 대한 즉시 거래 차단 조치를 본격화한 데에는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불법사금융의 수단으로도 빈번하게 악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불법사금융업자들은 연 수천%에 달하는 초고금리 이자를 챙기면서 법망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의 계좌, 즉 대포통장을 이용하는데 이 계좌를 신속하게 정지해야 피해도, 추가 범죄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2월 23일 불법사금융 원스톱 종합·전담 지원시스템 도입 이후 약 8주간 피해신고 과정에서 금융거래 내역이 확인된 의심계좌는 59건이다. 금융회사가 이들 계좌에 대해 고객확인을 요구했지만 누구도 이용 내역을 소명하지 못하면서 현재 입금과 출금·이체가 정지됐다.

같은 기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사례까지 포함하면 불법사금융 거래 의심계좌는 총 132건으로 늘어난다. 이 역시 계좌가 이미 해지된 사례(16건), 고객확인이 진행 중인 사례(20건)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래가 제한된 상태다. 계좌 명의자 대부분은 ‘강화된 고객확인’에 응하지 않았고 소수만이 증빙서류를 제출했는데 그조차도 거래 목적과 자금 원천을 증명하지 못했다. 사실상 대포통장임이 확인된 셈이다.

과거 대포통장이 단순히 타인 명의의 계좌를 양도받아 사용하는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범죄와 연결돼 유통·관리되는 구조로 진화했다. 이들은 모집, 집금(수거), 추심, 자금관리를 분업화하고 있는데 특히 불법사금융과 연계된 경우 계좌 명의자에 대한 협박 등 강압적인 추심이 두드러진다.

불법사금융업자는 주로 급전이 필요한 사회초년생이나 대학생을 고수익 보장 등으로 현혹해 차명계좌를 대량으로 확보한 뒤 원리금·연장비·지연금 등을 입금받는 1차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후 여러 계좌를 거쳐 자금을 분산하고 최종적으로 상품권 등으로 현금화해 추적을 따돌리는데 입금부터 세탁, 현금화까지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돼 즉각적인 차단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불법사금융 대포통장 즉각 차단이 피해 확산을 예방하는 초동 조치인 동시에 범죄조직의 자금줄을 끊는 실질적인 대응이기도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포통장은 비대면 계좌 개설이 손쉬운 인터넷은행이나 감시망이 덜 촘촘한 상호금융 등 2금융권에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시중은행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불법사금융 계좌 정지 실적을 봐도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거래를 막은 사례만 총 27건으로 파악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포통장을 ‘감기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고는 “잊을 만하면 또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대포통장은 한동안 잠잠하다가도 진화된 사기 수법이 나오거나 새 통장이 흘러 들어오면 다시 기승을 부리는 패턴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불법사금융의 경우 피해자가 20~30대 사회초년생이 많은데 대포통장 명의자도 청년층이 다수라 서로가 서로를 좀먹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당장 몇십만원이 급해 통장을 넘긴 청년이 결과적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청년이 힘들게 모은 돈을 가로채는 범죄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일부 불법사금융업자는 이자 감면 등을 미끼로 채무자의 통장을 받아 불법 행위에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불법사금융의 피해자가 가해자이자 공범이 되는 굴레에 갇히게 한다.

불법사금융 대포통장 즉각 차단 조치는 본격 시행 두 달 만에 실제 피해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30대 초반 A씨는 대출 원금이 20만원에 불과했지만 초고금리 계약으로 갚아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에 연장비를 내며 상환기일을 미루고 있었다.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매일 추심 압박을 받아왔지만 계좌가 정지되면서 입금 요구도 중단됐다.

20대 초반 B씨 역시 대출 원금은 20만원 수준이었지만 수백 배에 달하는 이자를 갚지 않으면 계약 당시 제출한 가족관계 서류와 연락처 정보를 유출하겠다는 협박을 시달려왔다. 계좌 차단 이후 추가적인 금전 요구와 협박이 멈췄고 B씨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만 지난해 1~11월 중 불법사금융 피해 상담·신고 건수만 1만6000건을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적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권은 경찰 신고 기준으로만 불법사금융 계좌 수가 수천개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사금융 계좌 거래중단 조치 강화와 함께 대포통장 가능성이 높은 해당 불법추심 계좌 명의인의 다른 금융사 계좌나 범죄수익이 이체된 집금계좌도 동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장에서는 금융권 공동 의심계좌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대포통장 양도·대여자 처벌 강화, 명의자 소명 불응 시 후속 조치 강화 등도 정책 제언으로 나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불법사금융은 사회 전체의 공조가 필수적인 지능형 범죄”라며 “특정 은행에서 거래가 차단되면 다른 은행으로 범행 무대를 옮기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반복되지 않도록 금융사 간 의심계좌나 사기 연루자 정보 등 공유가 활발할 수 있도록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 확인 강화 조치에 대한 금융사의 면책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계좌 정지와 같은 선제적 예방 조치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어려움은 고객 불편”이라며 “금융사가 악성 민원이나 법적 분쟁 리스크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데 관련 법적 책임을 경감해 주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면 일선 금융사가 더 적극적으로 범죄 방지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은희·정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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