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락이 만든 ‘운명적 조우’…이한철·유태평양이 그릴 우리 음악의 단맛 [인터뷰]

2026 여우락, 3일 개막…20여일 대장정 예술감독-음악감독으로 만나 혁신적 무대 로커 판소리부터 댄서 연희까지 개성 충돌

 

‘2026 여우락’ 음악감독 유태평양, 예술감독 이한철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통의 깊은 성음 위에 동시대의 명랑한 멜로디가 넘실거린다. 로커는 판소리를 부르고, 소리꾼은 록을 한다. 블루스와 전통 소리가 만나고, 스트리트 댄스는 전통 연희와 어우러진다.

국립극장의 대표 여름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이 “우리 음악은 이미 당신 곁에 있다”는 짧고 강렬한 외침으로 돌아왔다. 올해로 17회째 맞는 이번 공연에선 30년 차 대중음악가 이한철과 국립창극단 출신의 젊은 소리꾼 유태평양이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으로 출격한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이미 ‘혁신’이다

“예술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에요. 개성 강한 사람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낼 지금의 우리 음악이 여기 있어요.” (유태평양)

장르의 경계를 지우고 “누구나 즐기는 우리 음악”을 표방하며 치열하게 판을 짜고 있는 두 사람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관객석에서 무대로, 소리꾼에서 창작자로

둘의 조합은 뜻밖의 ‘팬심’이 시작이었다. “괜찮아, 잘될 거야”라며 ‘국민 비타민 송’을 들려준 이한철 감독이 국립극장 기획팀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은 지난해였다.

매일 아침 7~9시. 국악방송의 라디오를 진행하며 장르를 넘나들고 있던 이한철은 “우리 음악에 눈을 뜨던 중 담당 PD가 여우락 공연을 예매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한 달간 이어지는 공연 티켓을 통째로 구매했다. 그는 “처음엔 일정이 빡빡해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행지에서나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쾌감을 경험했다”고 돌아봤다.

‘여우락 개근상’을 받을 만큼 높은 출석률로 객석을 지킨 그는 국립극장이 차기 예술감독으로 점 찍은 ‘변화의 아이콘’이었다. 이한철은 “내가 저 무대에 서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는데, 예술감독이라는 중책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2026 여우락’ 음악감독 유태평양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였고,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인 유태평양과 여우락은 ‘운명적 만남’이다. 여우락 페스티벌에 출연자로 선 적은 있지만, ‘감독 자리’를 단체의 단원이 맡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오랜 시간 몸담았던 창극단을 나와 창작자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유태평양에게 여우락이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아직 음악감독으로 자리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느꼈다”며 “그런 데다 사실 음악감독이라는 자리는 예술감독님이 다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담의 이유는 그가 잘 알고 있던 무대라는 데에 있었다. 창극단의 간판으로 10여년 넘게 생활해 왔던 유태평양에게 여우락은 남달랐다. 이 축제는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 대중이 미처 몰랐던 전통음악과 젊은 국악인들의 포효가 남산을 들었다놨다 하는 전례 없는 장이다. 2010년 시작한 이후 누적 관객 수 약 8만8000명, 평균 객석 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그는 “국립극장이라는 한 지붕 아래 있을 때부터 늘 내게 자부심이자 자긍심이었다”며 “내가 정말 이 자리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점검한 뒤에야 결정했다”고 했다. 확답을 미루고 일주일간 머리를 싸맸다. 머릿속으론 이미 여우락 가상 시즌을 돌려봤다. 퇴단 이후 소리꾼, 공연자를 넘어 창작자, 제작자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첫발에 ‘여우락’은 도약의 기회였다.

“국악인은 인생을 거는 축구선수”…경계를 지우는 원팀

여우락은 ‘협업 무대’의 원조다. 이질적 장르와 분야의 아티스트를 엮어,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화합을 보여주는 축제를 꾸민다. 세종문화회관의 싱크넥스트를 비롯해 ‘낯선’ 두 아티스트를 묶는 무대가 지금이야 흔한 공식이 됐으나, 그 기원을 따지고 가면 사실 ‘여우락’이 있다.

두 사람이 정의하는 여우락은 매해 한 번씩 오르는 일회성 협업의 장이 아니다. 유 감독은 “단순히 두 아티스트를 붙여놓고 ‘같이 한 곡 해달라’는 무대가 아니다”며 “늘 아티스트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립제이×유희×박동석의 ‘몽중유희’ [국립극장 제공]

여우락 무대의 특별함은 아티스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나온다. 이미 있었던 ‘오래된 음악’은 다양한 세대를 거치며 급격히 진화했다. 이 무대에 서는 연령, 성별을 초월한 주인공들은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혼을 태운다. 이 감독은 “국악인들의 무대는 직업적 차원을 넘어 온전하게 인생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한 몰입과 에너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여우락은 바로 그 치열한 에너지의 꼭짓점이다.

올해의 슬로건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우리 음악’은 10여년의 세월을 켜켜이 쌓아온 여우락 무대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 감독은 “여우락은 매년 기조를 확 바꾸기보다 십수 년간 스펙트럼을 쌓아왔다”며 “최근 몇 년이 실험적인 무대를 늘려온 시기였다면, 이번엔 대중성 쪽으로 폭을 넓히는 단계”라고 했다.

라인업은 역대 최고라 할 만큼 쟁쟁하다. 서로 다른 장르의 두 감독은 모든 인맥과 역량을 총동원해 한 달 살림을 꾸렸다.

‘뮤지션의 뮤지션’인 강산에·선우정아·하림을 필두로 댄서 립제이까지 출격한다. 여기에 국립창극단 김수인, 소리꾼 정보권 정윤형, 서의철 가단, 상자루 등 지금 우리 음악의 최전선에 선 젊은 국악인이 총출동한다. 물론 캐스팅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이한철은 “국악을 너무 높은 산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았다”며 “한두 달 설득하다가 결국 못 하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2026 여우락’ 음악감독 유태평양, 예술감독 이한철 [국립극장 제공]

서로 다른 아티스트를 조합하는 철학은 “비비드(Vivid)한 개성의 충돌”로 삼았다. “자기 색깔이 확고하고 뚜렷한 두 아티스트를 매칭해 강렬한 융합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대신 매칭의 핵심을 ‘균형’으로 잡았다. 이 감독은 “보컬리스트와 연주자가 동시에 무대에 서면 보컬 쪽이 부각되기 마련이라, 셋리스트 배치를 조율해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와 소리꾼의 조합에선 인지도 측면에서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린다. 유태평양은 “모두가 주인공인 공연을 찾기 어렵듯,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그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연주나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무대를 비우지 않고 서로에게 시선을 주고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원 팀(One Team)’을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쏠림 현상의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한 음악적 안전장치다.

두 감독은 집요하고 지독하다. 출연자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진행 상황을 묻기도 하고, 다양한 요구도 한다. 강산에는 “너무 욕심이 많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두 사람은 눈여겨봐야 할 조합으로 소리꾼 정윤형과 블루그래스 밴드 컨트리공방을 꼽았다. 이한철은 “블루그래스와 판소리가 만난 적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다”고 강조했다. 젊은 소리꾼 정윤형은 이 무대를 통해 알을 깨고 나온다. 유태평양은 “전통만 고집해 온 소리꾼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전통만 한다고 정의해왔다”며 “우리가 새로운 정의를 드려보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또 하나의 모험은 왁킹 댄서 립제이의 ‘여우락 입성’이다. AI(인공지능) 보컬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전통 시각예술 요소까지 함께 버무려지는 무대다. 유태평양은 “사실 우리끼리도 굉장히 큰 모험”이라며 “며칠씩 워크숍을 함께하며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창극 한 편을 만드는 듯한 과정”이라며 감탄했다.

이한철 [국립극장 제공]

 

창부타령과 택시비 7700원…두 감독의 음악적 자화상

두 감독은 각각 개·폐막 공연을 통해 저마다의 음악적 DNA를 펼쳐낸다.

이한철 감독이 이끄는 개막 공연은 대중음악 관점에서 민요를 재해석한 무대다. 이 감독은 탑라이너(Top-liner)로서의 장기를 발휘해 7곡의 신곡을 매치했다. 펑크, 레게, 재즈 리듬 위에 최수연의 목소리를 얹은 타이틀곡 ‘창부타령(부제 생각)’은 유럽 록 밴드 스타일의 거친 사운드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을 전망이다. 그는 “기타·드럼·베이스로만 짜인 단순한 편성인데, 이상하게 계속 듣게 되는 곡”이라며 “발표하는 신곡 중에서는 사람들 기억에 가장 남았으면 하는 곡”이라고 했다.

유태평양 감독의 폐막 공연은 사적이고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채워진다. 새벽녘 작업실에서 퇴근할 때 찍히는 택시 할증 요금을 제목으로 한 ‘7700원’, 최근 이사를 하며 “고여 있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이사”라는 단상을 담아낸 ‘248’ 등 일기장과 사진첩 속 기록들이 흥얼거리는 팝 음악과 판소리의 어법을 넘나든다. 유태평양이 선보이는 1인 음악극의 모습이다.

그는 “곡을 만들 때 스토리가 항상 중요하다. 경험과 이야기를 어떻게 내 방식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이 사적인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가 되고, 여우락의 미래에 대한 축원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 몸담았던 두 사람의 ‘투톱’ 호흡이 페스티벌의 진화이자 공존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한철은 “대중음악과 우리 음악이 서로 존중과 눈높이를 갖고 만났을 때 더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10여년간 축적된 여우락의 실험적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관객들이 단맛을 느끼며 쉽게 부딪칠 수 있는 무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축제는 ‘늘’ 곁에 있었던 ‘우리 음악’을 다른 빛깔로 꺼내 펼쳐낸다. 유태평양은 “조선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현대의 반팔과 짧은 스커트가 천지개벽할 일이지만 시대가 변하며 당연해졌다”며 “국악 역시 대중의 이해도가 높아지면 지극히 당연하고 친숙한 주류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술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이렇게 뭉친 사람들의 무대가 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보람찬 일이 될 것 같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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