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돈봉투’ 자신만만 검찰 화들짝…‘황금폰’의 무죄 반전 왜? [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송영길(왼쪽) 소나무당 대표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연합, 뉴시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지난 2023년 4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소나무당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에서 탈퇴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8일 돈봉투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 됐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돈봉투를 전달·수수한 혐의를 받은 몇 의원들이 1심에서 이미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사람은 유죄인데 정점으로 지목된 송 대표는 무죄입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이정근 통화 녹음’을 증거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허경무)는 왜 이런 판단을 내린 걸까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이란?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송영길 후보측 캠프 관계자들이 표를 확보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2023년 4월, 검찰이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관련 통화녹음을 확보하고 수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이 전 부총장은 당시 송영길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사라진 28분, 법원은 ‘강압 수사’ 의심


지난 2022년 9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하 이씨)의 ‘휴대전화 3대’에서 시작됩니다. 이씨는 개인 비리로 2022년 9월 구속됐습니다. 정부 지원금이나 사업 허가를 도와주겠다며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을 받은 혐의(알선 수재)였습니다. 이 씨는 개인 비리 사건 당시 사용하던 휴대전화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10월 7일 오후 10시 28분께 갑작스레 변호사 A씨에게 전화해 자신의 휴대전화 3대를 검찰에 ‘임의 제출’하라고 지시합니다. 당일 오후 2시 43분께만 해도 휴대전화를 “돌로 깨서 없다”며 재연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죠. 임의제출이란 증거물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없이 관련자가 증거물을 자진해서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휴대전화 속에는 이씨의 개인 비리는 물론 민주당 돈봉투 사건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이 들어있었습니다. 검찰은 2023년 1월 녹음파일을 근거로 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씨의 ‘변심’ 계기를 의심합니다. 검찰의 수사보고서에는 ‘오후 7시 20분께 검찰의 설득 끝에 휴대폰에 대한 임의제출 의사 확인’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검찰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조사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했습니다. 2시간이 지난 오후 7시 다시 녹화를 시작해 오후 10시에 녹화를 종료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의 녹화 영상에는 검찰이 이씨를 설득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영상 녹화가 종료되고 28분 후 이씨는 A씨에게 전화해 휴대전화 3대를 가져오라고 지시합니다. 1심 재판부는 ‘사라진 28분’에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송영길 돈봉투 사건 1심 판결문(25.01.08)

①이정근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A에게 전화하게 한 경위가 무엇인지 사건 기록상 불분명한 사정 ②검찰수사관이 A에게 전화해 한 말의 내용에 대한 녹음 등 이정근과 A의 제출 임의성을 뒷받침할 만한 당시 사정에 관한 자료도 기록상 부존재하는 사정 (중략) 등을 종합해 볼 때, 이정근의 임의제출 과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A의 제출 과정 역시 수사기관의 주도하에 상대적으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위법 수사 재발 방지”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가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민주당 돈봉투 사건 선고기일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송 대표는 돈봉투 사건 관련 혐의는 무죄가 나왔으나 불법 정치자금 모금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시스]


1심 재판부는 설사 강압에 의한 제출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씨가 ‘민주당 돈봉투까지 수사해도 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씨에게 직접 ‘다른 사건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에도 동의하느냐’고 물어 확인받았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검찰의 질문이 모호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이씨는 알선 수재 혐의 외에도 CJ 자회사인 한국복합물류의 고문직에 정치권 인사 2명을 앉히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거론되던 사건 외에 다른 사건들에까지 해당 녹음파일을 ‘무제한’으로 사용해도 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송영길 돈봉투 사건 1심 판결문(25.01.08)

이정근이 온전히 자발적인 의사로 현재 수사 중에 있지 않고 수사기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범죄를 포함해 자신의 범행 사실 전부에 대한 무제한적 자수를 결심하고 휴대전화 3대의 전자정보 전체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검사 주장과 같이 (중략) 해석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제출자의 의사를 수사기관이 함부로 추단하는 것’에 해당한다.

(중략) 이정근의 위와 같은 증언도 ‘휴대전화 속 전자정보를 제한 없이 전부 제출하기 위해서 범위를 한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돈봉투 사건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것에 한정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다.


더 나아가 검사의 모호한 질문이 의도적이었다고 의심합니다. 이정근의 ‘황금폰’을 무제한으로 확보한 뒤 다른 사건의 수사·재판에 사용하려 했던 것 아니었냐는 겁니다.


송영길 돈봉투 사건 1심 판결문(25.01.08)

검사는 유독 이 사건에 관해 작성된 2023.1.16자 이정근에 대한 진술조서(돈봉투 관련 사건에 대한 최초 진술조서)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해까지 해당 제출물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특정하여 묻는 대신 “진술인은 임의제출한 USB 3개와 휴대폰 3개 안에 저장된 녹음파일 등 정보들과 선별 절차를 마친 메시지를 다른 사건의 증거로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 맞나요”라고만 물어보았다.

(중략) 이 정도의 포괄적인 질문과 답변만으로 이정근의 임의제출 범위에 관한 의사를 명확히 확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고, 오히려 검사가 이 사건 휴대전화 3대 내 전자정보를 포괄적으로 여러 사건에 사용하기 위해 포괄적인 문장 형태의 질문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1심 재판부는 진실 파악을 위한 증거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임의제출한 증거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절차·범위가 제한된 압수수색과 달리 임의제출로 확보한 증거가 ‘무제한’으로 사용될 경우 자칫 사생활 침해, 인권 유린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1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으로서 이정근 휴대전화 무관전자정보에 기초한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도미노 무죄 나오나…윤관석 항소심도 영향


지난 2023년 8월 윤관석 전 의원이 민주당 돈봉투 사건 관련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히면서 1심 재판부의 이정근 황금폰에 대한 판단은 다시 쟁점이 될 예정입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송 대표 1심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 재판부도 있습니다.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윤관석·임종성 전 의원과 허종식 의원 관련 사건입니다. 윤 의원은 돈봉투를 전달한 혐의, 임 전 의원과 허 의원은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정근 통화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습니다.

검찰은 송 대표 사건 결심 공판에서 “윤관석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위법 수집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증거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고 (돈봉투 사건을) 제외하고 임의 제출하려 했다면 수사가 개시했을 때 이의를 제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들 3명 의원의 항소심을 맡고 있는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설범식·이상주·이원석 부장)는 송 대표 사건 1심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재판부는 “(송영길) 1심에서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상이 된 증거가 우리 사건과 어느 정도 겹치는지 임의제출한 증거의 사용 범위가 다른지, 같은지 등 정리해서 제출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검찰은 지난해 초부터 ‘돈봉투 수수’ 혐의로 또 다른 6명 현직 의원들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도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6명 의원이 출석하지 않아 불구속 기소 또는 체포영장 청구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명 의원들 또한 송 대표와 같은 주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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