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가동 중단 시 세포 전량 폐기·재가동 수십일 소요
15조 초격차 투자 제동 우려…생명 윤리 외면 비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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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선두 주자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창립 이래 첫 파업 위기에 직면했다. 노동조합이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고율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고객사에 직접 리스크를 전파하는 등 사업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9일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지부가 지난 24일부터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 95.52%(3351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안이 가결됐다. 전체 투표율은 95.38%를 기록했으며 반대는 4.48%에 그쳤다. 노조 가입자 수가 전체 임직원의 약 75%인 3689명에 달하는 만큼, 실제 파업 돌입 시 생산 라인 가동 중단 등 치명적인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CDMO 사업의 본질인 ‘신뢰’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투표를 앞둔 지난 24일, 보도자료 배포 대행업체를 통해 영문 보도자료를 해외로 송출하며 회사의 리스크를 앞장서서 알리는 행보를 보였다. 노조는 해당 자료에서 파업 시 “글로벌 고객사들에 중대한 구조적 공급망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라며 “바이오산업에서 요구되는 24시간 연중무휴 생산을 위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자해적’ 리스크 전파는 실제 글로벌 수주 현장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제약·바이오 행사 ‘디캣 위크(DCAT Week)’에 참석해 수주 활동에 박차를 가하던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노조의 영문 보도자료를 접한 고객사들로부터 직접적인 사안 문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생명을 다루는 특성상 매우 보수적이며, 신뢰를 중시한다. 바이오 신약은 10년 이상의 시간, 1조 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파업’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파트너 선택지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CDMO 공정의 특수성도 위기감을 키우는 요소다. 바이오 공정은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하는 ‘연속 공정’으로, 단 한 번의 중단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가동 중단 시 배양 중인 세포는 전량 폐기해야 하며, 설비 재가동을 위한 세척과 검증(Validation)에만 수십 일의 시간과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 노조가 이러한 산업적 특성을 실력 행사 수단으로 삼는 것은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넘어 K-바이오 전반의 경쟁력 훼손으로 번질 조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은 2025년 279억 달러의 역대 최대 수출고를 기록했다. 매출의 97%를 수출에서 올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성장의 핵심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78만 5000ℓ로 세계 최고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쟁사인 스위스 론자, 일본 후지필름 등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초격차’ 유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인천 송도에 제2바이오캠퍼스에 이어 제3바이오캠퍼스를 조성해 CDMO 생산능력을 극대화하고,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차세대 모달리티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공장 인수 등을 포함하면 2034년까지 약 15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투자다. 노조의 파업은 이러한 중장기 투자 동력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선점 경쟁에서 경쟁사에 수주 기회를 헌납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바이오의약품은 중증 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경우가 많아, 공급의 안정성은 ‘치료의 연속성’ 확보라는 생명 윤리와 맞닿아 있다. 생산 시설의 파업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직·간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업계가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노동권의 가치가 환자의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노조는 평균 14.3% 수준의 임금 인상과 1인당 3000만원의 격려금 지급, 3년간 자사주 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채용·승진·징계 등 인사 제도 전반에 대한 노조 사전 합의권과 경영권 사안에 대한 거부권까지 주장하고 있어 사실상 경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측은 6.2%의 임금 인상안과 그룹 가이드라인에 따른 성과급 산정 방식을 제시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권의 가치가 환자의 생명권이나 치료의 연속성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노조의 무리한 투쟁은 결국 자신들의 성과급 재원과 미래 성장 동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내달 21~22일 사업장 집회를 거쳐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임금협상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