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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열 진통제로 쓰이는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에 이어 암의 발생이나 전이,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는 연구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게티이미지] |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기치 않게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던 계기는 아스피린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손등에 커다란 멍이 포착됐고, 국무회의에서 종종 눈을 감고 10~15초간 멈춰있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건강 이상설이 확산됐던 것.
트럼프 대통령은 혈전 예방을 위해 하루에 325㎎ 상당의 고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 것이 멍이 생긴 원인이라 해명했고, 건강 이상설은 잠잠해졌다. 본 효능인 해열, 진통 외에도 혈전 예방 효과로 널리 알려진 아스피린이 암 위험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고 알려졌다.
아스피린의 암 확산 방지 효과는 1972년 종양 세포를 주입한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확인됐다. 미국에서 진행됐던 당시 실험에서 아스피린을 투여받은 쥐들은 그렇지 않은 쥐들에 비해 암이 전이될 위험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확인하려면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스피린 투여군과 비투여군을 나눠 경과를 봐야 하지만, 이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환자마다 암 치료 방식이 다를 수 있어 아스피린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 이를 뉴캐슬 대학교 임상 유전학 교수 존 번은 린치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으로 해결했다.
린치증후군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대장암을 비롯한 여러 암의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은 유전성 질환이다. 유전자 돌연변이 유형에 따라 린치증후군 환자의 10~80%는 평생 대장암을 겪게 된다.
BBC에 따르면 번 교수팀은 지난 2020년 10년간 린치증후군 환자 861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최소 2년간 매일 600㎎의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이 대장암 위험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발표했다. 이후 진행한 두번째 임상 시험에서는 첫번째 임상보다 훨씬 낮은 용량의 아스피린(75~100㎎)을 실험군에 투여한 결과, 암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첫번째 임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효과적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번 교수는 BBC에 “2년간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은 결장암 발생률이 50% 낮았다”고 전했다. 두번째 임상에 사용한 저용량(75~100mg)은 기존에 알려진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를 위해 사람들이 복용하는 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스피린이 암 위험을 낮추는 효과는 린치증후군이 아닌 다른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9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외과학 교수 안나 마틀링은 지난 3년간 298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아스피린이 암 재발 위험을 낮춘다고 밝혔다. 마틀링 교수팀은 한 그룹에는 암 수술 후 3개월 이내부터 매일 160㎎의 아스피린을, 다른 그룹에는 위약을 투여했다. 아스피린을 투여한 그룹은 대장암 재발 위험이 위약 그룹보다 절반 이하로 나타났다.
아스피린이 대장암이 아닌 다른 암에도 그 위험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지는 현재 관련 연구가 진행중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종양학 및 임상 시험 교수인 루스 랭리는 영국과 아일랜드, 인도에서 대장암, 유방암, 위식도암, 전립선암을 앓았던 1만100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시험을 진행중이다.
아스피린이 암의 발생이나 확산,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두고 연구진들은 아스피린이 혈액 응고를 예방하는 것이 면역세포로 하여금 암 세포를 공격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파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암 면역학 교수 라훌 로이초두리는 아스피린이 혈전 생성 인자인 트롬복산A2를 억제한다는 점을 먼저 설명했다. 트롬복산A2는 면역 체계의 T세포가 전이성 암세포를 발견하고 사멸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아스피린은 이런 트롬복산을 억제하기 때문에 면역 체계의 T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하고 사멸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스피린이 세포 내 효소인 콕스(Cox)-2를 억제하는 것도 암 예방 기전의 일부로 추측된다. 콕스-2 효소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돕는데, 이는 체내에서 통제되지 않은 세포의 성장을 유도해 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한다. 아스피린이 콕스-2의 작용을 억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암이 발생하거나 확산될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번 교수팀의 두번째 임상은 현재 동료평가(peer review·특정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 논문의 타당성, 독창성, 신뢰성을 출판 전에 검증하는 과정) 단계에 있다. 아스피린이 암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가 연이어 나오면서, 보건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영국은 2020년부터 린치증후군 환자들에게 20세부터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마틀링 교수팀의 연구를 기반으로 지난 1월부터 대장암 환자들에게 재발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관찰될 경우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하고 있다.
단, 연구진들은 아스피린이 위험성이 확인된 특정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스피린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나 모든 암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낮다는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