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내리고 건보급여 적용…주요국 ‘비만약’ 확대 사활

美·프랑스, 공적 건보 잇따라 편입
日, 약가 현행 대비 25% 일제 인하
한국선 ‘미용’ 묶여 전액 본인 부담


일라이릴리 비만치료제 마운자로(왼쪽)와 노보 노디스크 비만치료제 위고비. [로이터·연합]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 및 당뇨 치료제를 둘러싸고 해외 주요국들이 본격적인 ‘약가 통제’와 ‘공적 보장’이라는 양면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공적 건강보험체계 안으로 비만약을 전격 편입하고 일본이 시장 확대를 이유로 약가를 25% 인하하기로 결정하면서, 전액 비급여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형 건보 적용 논의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공적 건강보험을 총괄하는 건강보험국(CMS)은 오는 7월 1일부터 메디케어 파트 D(외래환자 처방약) 수혜자를 대상으로 특정 GLP-1 의약품을 월 50달러(약 6만8000원)에 제공하는 ‘메디케어 GLP-1 브릿지’ 시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미국 정부는 시범 사업이 종료되는 2027년 말 이후, 2028년부터는 이를 정식 메디케어 제도인 ‘BALANCE 모델’ 안으로 편입할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도 파격적인 공적 보장 정책이 나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비만·당뇨병 치료제인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중증 비만 환자에 한해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하는 행정 고시 2건을 관보에 게재했다. 오는 6월 15일부터 시행되는 이번 조치로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최초로 비만 치료제에 보험을 적용하는 국가가 됐다.

프랑스의 보험 적용률은 65%다. 급여 대상은 체질량지수(BMI) 40㎏/㎡ 이상의 고도 비만 환자, 또는 BMI 35㎏/㎡ 이상이면서 당뇨·고혈압·수면무호흡증 등 동반 질환이 1개 이상 있는 중증 비만 환자 중, 6개월간 1차 영양 치료를 받았음에도 체중 감량이 5% 미만에 그친 경우로 제한된다. 보건 당국의 수혜 인구 추산은 100만~210만명이다.

처방 진입 장벽도 높게 설정됐다. 초기 처방 자격은 비만 전문센터(CSO)·대학병원(CHU)·재활 의료기관(SMR) 소속 의사로만 제한된다. 국가 협상 가격은 월 약 300유로(약 46만원)로, 65% 급여 적용 후 환자 본인 부담은 월 약 105유로(약 16만원)다. 다만 장기 중증 질환(ALD) 환자는 100%까지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대상 환자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 정부는 처방량 증가 시 연간 약 1억유로(약 1700억원) 이상의 건보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오남용과 재정 충격을 막기 위한 통제 장치를 함께 마련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건강보험 재정 지속성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약가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자문기구인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중의협)는 일라이 릴리의 당뇨·비만 치료제 ‘마운자로(マンジャロ) 피하주사’에 대해 ‘지속가능성 특례 가격조정’ 요건을 적용해 오는 8월 1일부터 약가를 전 규격에 걸쳐 인하하기로 의결했다.

인하 폭은 현행 약가 대비 25%다. 마운자로 2.5㎎ 제품은 기존 1924엔(약 1만8300원)에서 1443엔(약 1만3700원)으로, 최고 용량인 15㎎은 1만1544엔(약 10만9700원)에서 8658엔(약 8만2300원)으로 각각 삭감된다.

일본 보건당국이 이처럼 전격적인 약가 인하에 나선 이유는 마운자로의 연간 판매액이 1000억엔(약 9500억원)을 돌파하며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시장이 급팽창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등재 후 10년이 지나지 않은 신약이라도 연간 판매액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연 4회 수시로 약가를 재산정해 깎는 제도를 운용 중이며, 이번 조치 역시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해외 주요국들이 정부 주도로 약가를 통제하거나 공적 지원 체계 안으로 비만약을 편입시키는 반면, 한국의 논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국내에서 비만치료제는 의학적 치료가 시급한 고도비만 환자에게 처방될 때조차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100% 비급여 항목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비용을 전액 본인이 부담하고 있으며, 시장 공급 부족에 따른 품귀 현상과 음성적 유통 구조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비만치료제 급여화 검토를 지시했고, 보건복지부는 의학적 필요성, 제도 취지, 건강보험 재정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재정 부담’이다. 건강보험 급여 기준상 비만은 여전히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미용 목적의 신체 개선’ 프레임에 묶여 있는 데다, 급여화할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건보 재정이 순식간에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비만을 미용이 아닌 질병으로 간주해 단계적으로 급여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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