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쓸수록 터지는 전력 부품…나무에 기름 먹였더니 130년 만에 대체재 나왔다[후암동 논문 연구소]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챗GPT 한 번 쓸 때마다 전구 수십 개를 켜는 것과 맞먹는 전력이 소모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과학계가 130년 동안 바뀌지 않던 전력 핵심 부품의 소재를 통째로 뒤집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해법으로 지목된 건 뜻밖에도 ‘나무’였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에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예일대학교·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공동 연구팀은 나무에 기름을 스며들게 해 만든 절연 소재가 기존 절연지 성능을 최대 1.5배 뛰어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변압기 속에는 핵심 부품 ‘종이 한 장’이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대규모 전력은 송전선과 변압기(오른쪽 그림)를 거쳐 전압이 안전하게 조절된 후 산업단지와 각 가정으로 안전하게 분배된다. 변압기는 이 과정에서 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핵심 교차로 역할을 맡는다. 변압기 내부를 들여다보면 철심과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때 흰색/갈색으로 표현된 ‘절연 종이’는 철심과 전선 사이를 꼼꼼하게 가로막아 강력한 전류가 밖으로 새거나 합선(쇼트)이 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전봇대 위 변압기, 발전소와 가정을 잇는 송전탑 안에는 전기가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종이가 들어간다. 나무 섬유를 갈아 만든 이 절연지가 전력망 핵심 부품을 떠받치고 있다. 1890년대부터 쓰인 소재가 1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기존 절연지가 버틸 수 있는 전압은 밀리미터당 72킬로볼트(kV)로 가정용 콘센트(220볼트)의 300배가 넘는 전압을 종이 한 장이 막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AI 시대가 이 오래된 소재의 한계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변압기에 걸리는 부하가 커졌고, 과열과 절연 파괴로 인한 고장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열을 내보내는 능력도 낮다. 변압기 내부에서 발생한 열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내부 온도가 오르고, 고온에 장시간 노출된 절연지는 섬유가 끊어지면서 점점 바스러진다. 결국 절연이 파괴되고 변압기가 고장 난다.

나무에 기름을 먹이면 생기는 일

기존 절연지(B)와 새로 개발된 목재 신소재(C) 내 오일 분포 및 전기 파괴 경로 비교. 노란색 선은 전기가 통하지 않아야 할 절연체 내부에서 결국 전기가 새어 나가 스파크가 튀는 경로(전기적 파괴 경로)를 나타낸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연구팀이 주목한 건 나무의 구조였다. 나무 섬유는 한 방향으로 촘촘하게 정렬돼 있다. 기존 절연지는 이 섬유를 잘게 갈아버려 방향성을 없애는 방식으로 만든다. 연구팀은 반대로 나무의 결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절연 성능을 끌어올렸다.

제조 과정은 생각보다 직관적이다. 우선 나무를 화학 용액에 넣고 끓여 내부를 부드럽게 만든다. 나무 성분 중 기름이 들어갈 수 있도록 꽉 막힌 공간을 열어주는 작업이다. 그다음 빈 곳에 절연유를 가득 채워 넣고 강하게 압축한다. 이 압축 과정에서 기름이 채워진 통로가 평균 166나노미터 수준의 초미세 채널로 줄어든다.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 수준이다.

새로 개발된 목재 절연재(ODW) 제조과정. 얇은 나무판에서 섬유질 사이를 화학 처리를 통해 일부 녹여낸다. 나무 세포 사이에 미세한 빈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성분이 빠져나가 생긴 나무 내부의 미세한 구멍 속으로 절연 오일을 틈새 없이 꼼꼼하게 스며들게 만든다. 오일을 머금은 나무를 기계로 강하게 꾹 눌러 단단하게 압축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핵심은 기름이 채워진 통로의 배열 방식이다. 기존 절연지는 기름이 3차원으로 뒤엉켜 있어, 전기가 이 엉킨 경로를 타고 쉽게 번지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새 소재는 기름 통로를 한 방향으로만 나란히 정렬시키자 서로 단절됐다. 전기가 타고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자체를 일렬로 정리해 방전 경로를 차단했다. 골목 자체를 없애버린 셈이다.

수치로 증명된 성능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 개발된 목재 절연재(ODW)의 절연 강도는 밀리미터당 최대 105kV로, 기존 절연지보다 전기를 막아내는 힘이 1.5배나 강해졌다. 같은 두께로 훨씬 강한 전압을 버텨낼 수 있다는 의미다.

잡아당기는 힘에 버티는 인장 강도는 384MPa로 기존보다 4배 가까이 세졌다. 통상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들어가는 철근의 강도가 400MPa 수준임을 고려하면, 나무 소재가 사실상 ‘철근’과 맞먹는 뼈대를 갖추게 된 셈이다.

같은 환경에서 측정된 온도 분포도. (F) 새로 개발된 목재 절연재(ODW), (H) 기존에 사용하던 절연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변압기의 최대 적인 ‘열’을 밖으로 빼내는 능력도 1.5배 이상 좋아졌다. 실제로 연구팀이 이 목재 절연재로 변압기를 만들어 가동해 보니, 기존 플라스틱 소재를 썼을 때보다 내부 최고 온도가 10℃나 뚝 떨어졌다. 변압기는 내부 온도를 10도만 낮춰도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변압기 내부의 극한 환경을 재현해 150℃ 고온에서 6주간 끓이는 시험에서도 이 신소재는 망가지지 않았다. 기존 절연지는 성능을 잃었지만, ODW는 처음보다 강도가 조금 줄었음에도 기존 소재보다 3.6배 높은 단단함을 유지하는 등 내구성도 높았다.

상용화 가능성은?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한 목재 절연재(ODW) 생산 공정 과정 모식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연구팀은 ODW가 두루마리 형태로 이어 붙여 대량 생산하는 롤투롤(Roll-to-Roll) 방식으로 제조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신문이나 포장지를 찍어내는 것처럼 연속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길이 1.5미터, 폭 0.4미터 규모의 대형 시제품 제작에도 성공했고, 구리봉에 감을 수 있을 만큼 유연성도 확보했다.

실제 길이 1.5미터, 폭 0.4미터 크기로 제작된 목재 절연재(ODW) 대형 시제품.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4호]


다만 논문 단계의 성과를 실제 전력 인프라에 적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적지 않다. 전력 변압기용 절연 소재는 수십 년 단위의 내구성 검증이 요구된다. 이번 연구의 가속 열화 시험은 6주에 불과해 수십 년 운용 환경의 장기 검증과는 거리가 있다.

참고논문


DOI : 10.1126/sciadv.aed5744

논문 정보 : Meiling Wu et al. ,Oil-impregnated densified wood veneer with high electrical insulation enabled by nanosized oil channels.Sci. Adv.12,eaed574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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