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아름답다”…평생 ‘청년’이었던 화가 호크니가 남긴 것 [취향의 발견]

추상 미술 주류 속 구상 미술로 반기
시각의 혁명…역원근법 도입 ‘성과’
아이패드로 말년까지 작업 계속해


‘취향의 발견’은 나도 몰랐던 나의 문화적 취향을 알려주는 코너입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면 의외로 도움이 되는 문화 상식을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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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AP]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영국의 현대 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지난 1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호크니의 홍보 담당자는 “20세기와 21세기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인 호크니가 89세 생일을 약 한 달 남기고 런던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는데요.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계 거목의 타계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팬들은 애도하고 있습니다.

호크니를 수식하는 말은 많겠지만 지금 저는 ‘청년’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열정과 세상의 풍파를 겪은 노인 같지 않은 천진한 미소 때문입니다. 오늘 ‘취향의 발견’에서는 호크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주류에 반기 든 청년…구상 미술을 외치다


호크니의 예술 여정은 시작부터 주류 미술계를 향한 유쾌한 반동이었습니다. 1937년 영국 웨스트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의 전면에 등장한 1950년대는 서구 미술의 패러다임 전환기였습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을 지배하던 미술 사조는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였고, 평단과 미술관들은 “전통적인 구상미술의 시대는 끝났다”며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화가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행위는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던 시기였죠.

하지만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 입학한 호크니는 이러한 미술계의 압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추상 미술은 인간의 형상을 배제했고, 세상을 빼버렸다. 회화는 오롯이 인간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공유하는 도구”라며 구상 미술을 펼쳤습니다. 주류 사조의 눈치를 보는 대신 일상의 풍경과 좋아하는 시, 성적 정체성 등을 캔버스에 당당하게 그려 넣기 시작한 거죠.

이 시기 호크니는 영국의 초기 팝아트 운동을 주도하는 천재 청년으로 주목받았지만, 사실 대중 문화의 이미지를 차갑게 소비하던 다른 팝아트 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했습니다. 그는 대중적인 명료함 속에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서사를 담아 놓음으로써 구상 회화가 현대 미술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주류를 압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사진=테이트 브리튼]


수영장과 햇빛…찰나의 미학을 완성하다


호크니의 인생과 예술 세계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196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의 이주였습니다. 해를 보기 어려운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와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숨이 막혔던 호크니에게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과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죠. 특히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됐었기에, 성소수자 문화에 훨씬 개방적이었던 미국은 그에게 예술적·인간적 해방감을 안겼습니다.

LA에서 호크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수영장 시리즈’를 탄생시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얗게 반짝이는 수영장의 물빛, 인간의 육체가 물속으로 뛰어들 때 발생하는 역동적인 물보라의 시각적 흔적들을 포착했죠.

1967년 작인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은 이 시기 호크니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제목은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바로 그 작품인데요. 누군가 수영장으로 뛰어든 직후의 거센 물보라가 모던한 건물이 놓인 정적인 배경과 대비를 이룹니다. 호크니는 이 찰나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물보라를 그리는 데만 2주가 걸렸다고 해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캔버스 너머의 시간과 이야기를 축적한 회화를 캠버스에 구현한 것입니다.

수영장과 더불어 호크니의 전성기를 이끈 또 다른 축은 ‘2인 초상화(Double Portraits)’ 연작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연인, 친구, 가족 등 긴밀한 관계의 두 인물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은 호크니의 예술과 사생활이 결합한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한 남자와 수영장 가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요. 붉은 재킷의 서 있는 남자는 당시 호크니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피터 슈레진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이별 전 감정적 거리감과 묘한 기류를 완벽한 구도로 연출해 낸 이 작품은 지난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달러(한화 약 1019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로선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사진=크리스티 경매]


시각의 혁명가…원근법을 뒤집다


호크니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시각 원리’ 자체를 탐구했던 예술가였죠. 그는 현대인들이 맹신하는 카메라가 오히려 인간의 실제 시각 경험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카메라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세상을 본다. 하지만 인간은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된 원근법은 인간을 단 하나의 지점에 가둬 버렸기 때문에 일종의 감옥이 됐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980년대 ‘포토 콜라주’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호크니는 하나의 대상을 수십, 수백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촬영했고, 이 사진들을 캔버스 위에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여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했어요. 이 콜라주 작품들은 인간이 실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의 시각적 경험을 구현함으로써 그가 추구했던 시간과 공간의 서사를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앞서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이 시도했던 ‘입체주의(Cubism)’의 다시점 공간론을 현대적인 매체를 활용해 세련되게 발전시킨 것입니다.

나아가 호크니는 화면 안의 한 점으로 모든 시선이 모이는 기존의 원근법을 뒤집어 오히려 소실점이 화면 밖 관람객의 눈을 향해 뻗어 나오는 ‘역원근법(Reverse Perspective)’을 회화에 적극 도입했습니다. 그의 거대한 풍경화 앞에 서면 관람객이 그림 외부의 방관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림 속 길과 숲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공간적 몰입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시각의 혁명’ 덕분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그린 수선화. [BBC]


‘힙한’ 노화백, 아이패드로 봄을 그리다


전통적인 물감과 캔버스로 그린 작품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뒤에도 호크니는 결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원로 예술가가 디지털 기술을 ‘예술의 타락‘이라며 거부할 때, 그는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자신의 실험 도구로 흡수하는 얼리 어답터의 면모를 보였어요. 일찍이 1980년대에 컬러복사기와 팩스 기기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던 그는 2000년대 후반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자신의 새로운 ‘스케치북’으로 사용했던 거죠.

그에게 아이패드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어두운 새벽 방 안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스크린 화면을 통해 빛의 미묘한 변화를 즉각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환상적인 매체였습니다. 70세를 훌쩍 넘긴 노화백이 터치펜으로 디지털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신선함과 ‘힙(Hip)’함으로 다가왔어요.

그가 아이패드로 그린 고향 요크셔의 자연과 프랑스 노르망디의 풍경은 단순한 디지털 그래픽의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수채화의 투명함과 묵직한 유화의 질감을 디지털 픽셀 위에 완벽하게 구현해 낸 그의 ‘디지털 드로잉’ 작품들은 영국 테이트 브리튼,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관에서 전시됐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절망에 빠졌던 2020년 3월,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 자택에서 격리 중 아이패드로 그린 노란 수선화 그림을 BBC를 통해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도 봄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라는 메시지를 함께 남겼습니다.

바이러스도, 고립도, 인간의 그 어떤 비극도 자연이 선사하는 생명의 순환과 희망을 막을 수 없다는 짧은 문장과 찬란한 그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져 나가며 팬데믹에 지친 전 세계인의 가슴에 뭉클한 위로를 안겼어요. 예술이 사회에 전할 수 있는, 조용하고도 강한 힘이 무엇인지를 그는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사진=테이트 브리튼.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장애와 고독 이겨낸 거장…자연의 품으로


호크니에게 인간관계와 사생활은 그의 예술을 지탱하게 하는 뿌리였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금발로 탈색한 머리, 알이 큰 뿔테 안경, 줄무늬 셔츠, 짝짝이로 신은 원색 양말 등 독보적인 패션 감각을 자랑하며 런던과 LA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 큐레이터, 디자이너들과 깊은 유대를 맺으며 화려한 파티를 즐겼죠. 패션 디자이너 부부를 모델로 삼아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 담은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1971) 같은 작품들은 이같이 화려하고도 끈끈한 인간관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거장에게도 피할 수 없는 신체적 변화와 고독을 가져왔습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호크니는 선천성 난청 증상이 심해져 청력을 거의 상실하게 됩니다. 보청기에 의지해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고 친구들도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화려한 도시의 사교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장애와 고독은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예술적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호크니는 고향인 영국 요크셔의 시골 마을과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적한 농가로 거처를 옮겼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연의 빛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의 각도에 따른 나뭇잎의 색 변화를 관찰하고, 계절이 바뀌며 대지가 옷을 갈아입는 경이로운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남은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청년 시절보다도 더 밝고 청명한 원색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호크니는 반려견 ‘스탠리(Stanley)’와 ‘부지(Boodgie)’에 대한 작품도 여럿 남겼습니다. 닥스훈트 두 마리가 먹고 자는 일상을 담은 작품에서는 그의 가득한 애정을 볼 수 있어요. 이 그림들을 모아 화집 ‘강아지의 날들(Dog Days)’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EPA]


“예술가는 은퇴하지 않는다”…‘영원한 청년’ 호크니


호크니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지난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대 미술품 전시로서는 이례적으로 37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국내에 ‘호크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던 일반 대중과 젊은 세대까지 줄을 서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정도였죠.

2023년에는 그의 70년 예술 인생을 총망라한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 ‘비거 앤드 클로저(Bigger&Closer)’가 라이트룸 서울에서 열려 다시 한번 큰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는 은퇴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그림) 말고 무엇을 하겠는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한 말 대로 호크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붓과 아이패드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와 육체의 한계에 안주하는 대신, 매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의 곁에서 온기를 전해 준 화가인 만큼 그의 별세에 많은 이들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데이비드는 진정으로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노란 크록스 신발을 신고 궁 행사를 밝힌 것처럼 천재성을 가뿐하게 입었던 이”라며 “우리는 그 억누를 수 없는 매력과 재능, 끊임없는 혁신을 가장 그리워하겠지만, 그의 빛나는 창의성은 전 세계 미술관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추모했습니다.

호크니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테이트 브리튼의 앨릭스 파쿼슨 관장은 BBC에서 “호크니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지닌 무한히 창의적인 예술가”라며 “그의 별세는 미술계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전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자기 말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호크니. 독창적 시선으로 찬란한 작품을 남긴 그는 영원한 청년이자 다정한 화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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