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IAEA 사찰·동결자산’ 딴소리…협상 ‘살얼음판’

美 “IAEA 사찰 재개”·이란 “새 약속 없었다”
120억달러 해제 합의·사용처도 엇갈린 주장
美 “미국산 농산물 구매” vs 이란 “의무없어”
핵검증·제재 완화 우선순위 달라 험로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집무실에서 양자 컴퓨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배석한 행정각료들과 손짓하며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과 이란이 스위스에서 열린 첫 고위급 후속 협상에서 협상판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핵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히 좁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를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평가했지만, 이란은 “새로운 의무를 수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이 각각 핵 검증과 제재 완화를 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향후 60일 협상도 험로가 예상된다.

22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은 스위스 뷔르겐슈토크에서 열린 첫 후속 협상에서 호르무즈 해협 안전통행 체계 구축, 레바논 충돌 방지 기구 설치, 고위급위원회 및 실무그룹 구성 등에 합의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협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IAEA 사찰단을 다시 초청하는 데 동의했다”며 “이는 미국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 안에 사찰단 활동이 재개될 수 있다”며 “이란 핵 프로그램의 영구적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란이 앞으로 오랫동안 핵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요 무기 사찰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IAEA 사찰 재개를 가장 큰 성과로 부각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란은 즉각 선을 그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IRNA 통신에 “이란과 IAEA의 협력은 의회 승인과 최고국가안보회의 결정에 따라 기존 절차대로 계속될 것”이라며 “새로운 약속이나 새로운 의무를 수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IRNA도 스위스 회담에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새로운 합의는 없었으며 본격적인 핵 협상 역시 시작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양측의 온도차는 협상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IAEA 사찰 재개를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농축 우라늄 보유 현황과 농축시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찰단 복귀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란은 핵 협상에 앞서 미국이 종전 양해각서(MOU)에서 약속한 경제적 보상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MOU 13조를 근거로 레바논 등 전선의 군사 충돌 종료,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이란산 원유·석유화학 제품 수출 허용, 해외 동결자산 해제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번 회담에서도 핵 문제보다 레바논과 호르무즈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양측은 레바논 내 군사 충돌을 관리하기 위한 ‘충돌 방지 셀(de-confliction cell)’ 설치와 호르무즈 해협 상선 안전통행을 위한 연락체계 구축에 합의했다. 반면 고농축 우라늄 처리,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 핵시설 검증 범위 등 핵심 비핵화 쟁점은 본격 논의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이란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분야는 제재 완화였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을 60일 동안 허용하는 제재 면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제한적이지만 국제 원유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게 됐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는 양측이 비교적 빠르게 접점을 찾는 모습이다. 스위스 회담 직후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중재국인 오만을 방문해 후속 협의를 진행했다.

바드르 빈 하마드 알 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양측이 최근 체결된 미·이란 양해각서의 호르무즈 조항을 논의했으며 국제법 준수와 통항료 없는 안전한 항행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해협 안정화 조치가 실제 이행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동결자산 문제를 둘러싸고는 양측의 해석 차가 드러나고 있다. 이란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동결자산 120억달러 해제 문제가 합의됐다고 주장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도 “이란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수출 제재가 면제됐고 일부 동결자금이 해제됐으며 이란 재건 및 개발 계획이 가동됐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동결자금 해제가 이란의 핵 포기 이행과 연계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결자금 사용처를 둘러싸고도 양측은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해제된 자금을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란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타스님 통신에 현재 합의된 조항에 따르면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할 의무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동결자금을 반드시 필수품 구매에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재 대상이 아닌 다른 물품도 구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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