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유럽 전역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정전과 교통 차질, 휴교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이 공중보건을 위협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에 보건 시스템 강화를 촉구했다.
24일(현지시간) 유럽 곳곳에서는 역대급 폭염으로 인명 피해와 사회 기반시설 장애가 이어졌다.
프랑스는 이틀 연속 1947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날을 기록했다. 24일 전국 30개 주요 관측소의 주·야간 평균기온은 섭씨 30도로 집계돼, 전날 기록한 29.8도를 다시 넘어섰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당국을 인용해 이번 폭염과 관련한 사망자가 익사 사고 등을 포함해 최소 48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스페인에서도 최고기온이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고령자 2명이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 피소스는 지난 23일 최고기온 44.3도를 기록했고, 24일에는 파리 기온이 40.9도까지 치솟으며 6월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썼다. AFP통신은 이번 폭염 기간 프랑스 본토 96개 데파르트망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곳에서 40도 이상의 폭염이 관측됐다고 전했다.
폭염은 전력 공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서부 지역 변전소가 과열로 가동을 멈추면서 6만8000가구가 정전을 겪었고, 전국적으로는 최대 10만6000가구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원전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원자로 냉각수 공급 제한으로 한낮 원전 발전량을 총 전력 수요의 약 7% 수준인 4.1GW 줄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 국가에 공급하던 프랑스의 전력 수출량도 크게 감소했다.
AFP는 프랑스 전체 인구 6700만명 가운데 약 4400만명이 폭염 적색경보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독일 기상청과 유럽연합(EU) 공동연구소는 유럽에서 35도 이상 폭염을 겪는 인구가 약 9400만명, 30도 이상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3억5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역시 폭염 기록을 갈아치웠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상당 지역에 적색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햄프셔 기온은 36.1도까지 올라 1884년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했다.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35.6도를 약 50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BBC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휴교하거나 수업 시간을 단축한 학교가 1100여곳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철도회사들도 선로 안전 문제로 열차 운행을 대거 취소하며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관광 명소 운영에도 차질이 이어졌다. 프랑스 에펠탑은 조기 폐장했고, 영국 버킹엄궁은 폭염을 고려해 근위병 교대식을 축소 운영했다.
프랑스에서는 냉방기기 수요도 급증했다. 대형 유통업체 까르푸는 지난 22일 하루 동안 선풍기와 에어컨 약 3만대를 판매했으며, 아마존 프랑스의 냉방기기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탈리아는 보건부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폭염 대응에 나섰다. 로마와 밀라노를 포함한 16개 도시에 적색경보가 발령됐으며, 피렌체는 최고 41도, 밀라노는 38도까지 기온이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
당국은 25일 적색경보 지역이 17개 도시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냉방 설비 고장으로 입장권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벨기에도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되며 전국에 오렌지 열파 경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이날이 183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 24일이라고 밝혔다.
브뤼셀의 대표 관광지인 아토미움은 운영 시간을 단축했고, 네덜란드 역시 폭염 경보와 함께 야외 스포츠 행사가 취소됐으며 대중교통 운행 축소와 학교 단축수업이 이어졌다.
폴란드는 25일부터 27일까지 폭염 경보를 발령했고, 크로아티아와 헝가리도 연이어 적색경보를 예고했다.
로이터 기후 모니터는 현재 유럽 일부 지역 기온이 평년보다 최대 18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번 폭염의 원인으로 ‘오메가 정체(Omega Block)’ 현상을 지목했다. 그리스 문자 Ω(오메가) 형태의 기압 배치가 형성되면서 서유럽 상공에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공기가 장기간 갇혀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WHO도 폭염이 갈수록 인명 피해를 키우고 있다며 각국 정부의 대응 강화를 촉구했다.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데이터는 분명하다. 유럽 기온은 세계 평균의 약 2배 속도로 오르고 있으며 극심한 무더위의 가능성과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더 늦출 수 없다. 지도자들은 기후 탄력적인 보건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고 기후 행동을 가속하며 기후 위기 동인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이 일시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라 기후변화의 장기적 영향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럽 각국도 폭염을 단순한 기상 재난이 아닌 공중보건과 에너지, 사회 기반시설 전반을 위협하는 복합 재난으로 보고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