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해 온 중국기업들 “베트남도 끝났다”…무슨 일이?[디브리핑]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 흔들…우회수출 길목 막혀
미, 베트남까지 무역 압박 확대…중국 기업 투자 철회 잇따라
“다음 안전지대는 없다” 현지화 없는 이전 전략 한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부산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내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를 피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던 중국 기업들이 다시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을 새로운 무역 압박 대상으로 삼으면서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베트남도 더 이상 관세 회피를 위한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자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베트남으로 대거 이전했다. 중국에서 부품을 가져와 베트남에서 조립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우회 전략이었다.

베트남은 낮은 인건비와 미국 시장 접근성을 앞세워 중국 기업들의 최대 생산기지로 떠올랐고,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대표 수혜국으로 꼽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은 베트남을 상대로 지식재산권과 생산능력, 노동 관행 등을 대상으로 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중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제품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올 경우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뿐 아니라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통로까지 겨냥하기 시작하면서 베트남의 관세 우회 효과가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중국 섬유업체 자산(Jasan)은 베트남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 이 회사는 연간 양말 6000만 켤레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이었지만 토지 확보 지연과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접었다.

세계적인 태양광 기업 진코솔라도 베트남 투자 계획을 대폭 축소한 뒤 결국 프로젝트 자체를 취소했다. 미국이 베트남 생산 제품에도 반덤핑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미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 산업단지 전경. 하이퐁은 중국 기업들의 주요 생산기지이자 대미 수출을 위한 핵심 물류 거점으로 꼽힌다.[게티이미지]

2018년부터 베트남 하이퐁에서 공장을 운영해 온 중국 기계업체 톈쑤기계기술의 저우리빈 대표는 SCMP에 “미·중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미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무역 압박을 강화하면 베트남의 장점은 사라질 수 있다”며 “차라리 중국에 남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제 특정 국가가 아니라 ‘우회 수출’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 컨설팅업체 데잔 시라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댄 마틴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멕시코 등도 단순 조립을 통한 관세 회피 수단으로 판단되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다음 허점을 찾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라벨만 바꾸기 위해 공장을 이전하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도 전략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공장을 이전하는 대신 현지에서 원재료를 조달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현지화하거나,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와 중동 등 다른 시장으로 수출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도 대응에 나섰다. 중국 기업의 투자 유치는 유지하되 미국의 우려를 의식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고 우회 수출 단속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만으로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SCMP는 “트럼프 1기 때 성공했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이제 기업들은 ‘다음 베트남’을 찾기보다 현지 생산과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구축하는 ‘진짜 글로벌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