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폐인 속출..2~3편만 봐도 7시간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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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히트 드라마가 많아 질수록 ‘드라마폐인’이 되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한 몰아보기식 드라마 시청이 일상생활에 까지 지장을 주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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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드라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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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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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94′

“비밀이 알고 싶다. 상속자들은 응답하라”

뺑소니 사고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나정의 남편은 쓰레기? 아니면 칠봉이? 탄이냐, 영도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국에서 불어오는 ‘핫’한 드라마 바람에 미주 지역 이민사회의 ‘폐인’들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KBS ‘비밀’, SBS ‘상속자들’, 그리고 케이블방송 tvN의 ‘응답하라 1994′ 가 그 주범들이다.

자신을 위해 헌신한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린 남자, 진부한 쌍팔년대 스토리라도 괜찮다. 복수는 늘 통쾌한 법이니까.

재벌 남자들의 사랑을 몽땅 받아내는 신데렐라도, 오글거리는 대사도 눈감아 줄만 하다. 이민호에 김우빈이면 무엇인들 용서가 안되랴.

남편 맞추기 게임이 식상하면 어떤가. 대신 9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주옥 같은 음악과 명품 조연들이 주는 깨알 같은 재미가 넘치지 않나.

힘들고 지친 이민생활에 활력을 주는 드라마 좀 본다는 데 누가 딴지를 걸랴마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으니 항상 도를 넘는다는 게 문제다.

풀러튼에 사는 40대 중반의 이모씨(자영업)는 요즘 드라마에 빠진 아내 때문에 불만이 쌓인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아내는 내가 출근할 때 옷차림 그대로다. 컴퓨터 앞에는 수북히 쌓여 있는 빈 과자 봉투, 저녁은 며칠 째 배달(투고) 음식이다. 저녁을 먹을 때도 온통 드라마 얘 기 뿐이고, 아이들 숙제 봐주는 일도 잠자리 준비도 건성이다.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들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짜증 내기 일쑤고 아이들이 잠들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이들 재워 놓고 아내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잠자리에 든 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드라마를 보다가 새벽에야 잠든 아내가 늦잠을 자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씨는 “나는 관두고라도 아이들 아침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내에게 참다 참다 한 마디 건네면 돌아오는 것은 돈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하는 주제에 드라마도 못 보게 하느냐고 원망이 돌아온다”라며 한숨짓는다.

드라마 때문에 부부관계까지 나빠지는 경우는 비단 이씨네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아내이건 남편이건 어느 한쪽의 지나친 드라마 사랑이 문제다.

주말 드라마,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가 각각 일주일에 두 편씩. 게다가 방송사별로 쏟아진다. 여기에 요즘은 케이블 TV까지 가세했다. 보통 1회 방송 분량이 1시간 20분에서 길게는 1시간 30분이 걸릴 만큼 길다. 어지간한 영화 한편 분량이다. 드라마 3편을 시청하려면 일주일에 적어도 7시간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1주일에 한번 비디오샵으로 자동차를 몰고가 검은 플라스틱 봉투에 한 가득 비디오테입을 빌려 오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드라마 폐인’을 양성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원하는 모든 드라마를 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본방사수’는 물론 다운로드를 통해 ‘몰아보기’ ‘재탕에 삼탕’ ‘종영드라마 찾아보기’까지 가능하다. 특히 전업주부들에게 미국은 한국보다 드라마에 빠져들기가 더 좋다.

한국에 있으면 이래저래 바빠서 드라마를 챙겨 보기도 어렵거니와 일주일에 드라마 한두 편 본다고 ‘폐인’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며칠을 집중적으로 몰아보면 당연히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그 뿐인가. 진정한 드라마 폐인은 드라마 시청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청이 끝나면 곧바로 각종 사이트에 접속해 감상평을 주고 받아야 하고 꽂힌 배우가 있으면 유튜브 등에서 관련 동영상 순례까지 마쳐야 비로소 만족감을 얻는다.

사실 이씨의 아내처럼 다른 사람의 지적에 발끈하지만 ‘폐인’들 스스로도 문제점을 모르지는 않는다.

세리토스에 사는 주부 박모씨(40)는 드라마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아침이면 오늘은 드라마를 안 봐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에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이것만 보고 말아야지 하다가 다음편이 궁금해 또 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 픽업시간이고…. 드라마에 빠졌다가 현실로 오면 허탈하고 짜증만 난다”

전업주부들 뿐만이 아니다. 미주 한인여성 사이트 미씨USA에는 회사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 있다가 발각되어 경고를 받고 심지어 해고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본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드라마폐인’이 양산되는 요인을 인터넷으로 꼽았다.

과거에도 드라마 중독은 있었지만 개인취향 차원에 머물렀던 것에 반해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취향의 공유가 가능해지면서 확대재생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인 훈계나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뻔한 소리는 집어치우자. 드라마 보는 것이야 뭐 어떤가. 다만 드라마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여기지는 말자는 얘기다.

안타까움이 눈물처럼 쏟아지는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를 날린 이서진의 ‘다모’에서 비롯된 ‘폐인’시절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의 폐인이기를 자처해온 사례가 어디 남들 얘기일까. 지금 이 기획기사를 핑계삼아 지난밤부터 새벽 동틀 무렵까지 ‘상속자들’ 10편을 내리 ‘달렸다’.

드라마 폐인들이여, 이쯤에서 박차고 일어나자.

‘비밀’은 알고 보면 별거 아닐 것이며, 나정이 남편이 쓰레기면 어떻고 칠봉이면 또 어떠리. 1994년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응답하지 않겠는가. 재벌가의 상속자이면서 꽃미남인 이민호는 그림에 떡, 배불뚝이 내 남편과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밥 한끼에 비하랴.

무엇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를 다 보내기에는 11월의 캘리포니아 태양이 너무도 눈 부시지 않은가.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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