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빈은 영화 ‘역린’을 선택했다. 제대 후 중화권 팬 미팅을 소화하던 그는 ‘역린’의 시나리오를 만났다. 그에게 ‘역린’의 첫 느낌은 ‘캐릭터가 살아있는 희한한 시나리오’였다.
‘역린’의 흥행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삼청동의 모 카페에서 현빈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모습에서 예전보다 더 커진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팬 미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역린’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참 ‘희한한 시나리오’라는 느낌을 받았죠. 시나리오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었고 제의 받은 정조 역 외에도 탐이 나는 캐릭터들이 무척 많은 작품이라 한국에 들어와 감독님을 만났었죠. 감독님 또한 이 작품에 너무 빠져 있어서 마치 ‘역린’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결국 감독, 작가님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역린’을 선택하게 됐죠.”
이처럼 ‘역린’은 정조 역의 현빈과 상책 역의 정재영, 살수 역의 조정석을 비롯해 조재현, 김성령, 박성웅, 한지민, 정은채 등 국내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화려한 멀티 캐스팅과 더불어 100억대의 투자,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등 다수의 작품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아왔다.
현빈은 극중 사도세자의 아들로 평생 암살 위험 속에 살아 온 조선의 22대왕 정조 역을 맡았다. 역사는 정조를 왕권 강화와 인재 육성, 신분 차별 철폐에 앞장서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개혁 군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빈의 정조는 기존과는 차별화를 뒀다.
“촬영 전 감독님하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일대기를 그리거나 왕으로서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인간 이산’의 모습을 보여주자 였죠. 때문에 왕으로서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1~2장면 밖에 안 나와요. 나머지는 자기 주변의 사람에게 대처를 하는 모습이 주를 이뤘죠. 관객 분들은 왕의 모습을 기대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감독님 또한 사극 톤을 원하지 않았죠. 스물여섯 살의 왕이 얼마나 왕으로 보이겠어요. 어딘가는 어설프고 완성되지 않은 모습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줘야 하니까 대사 톤부터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썼죠.”

역사 속 정조라는 인물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뤄졌던 인물이다. 실제 인물일뿐더러 기존에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비교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빈의 정조는 기존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그는 야위고 미소 한 줌 없는 얼굴로 정조가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짐작 가능케 했다. 군 복역 기간 동안 연기에 관해 장고(長考)의 시간을 거친 그의 연기는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적인 테크닉들은 한참 작품을 하던 군 입대 전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대 후에는 테크닉 적인 면은 뒤쳐진 것 같은데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아요. 군대 안에서 개인적인 것과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기지만 어느 순간엔가 일이 돼 있었어요. 100을 놓고 봤을 때 10~20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군대라는 곳에서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그 공간과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역린’ 촬영을 하면서 모든 것들이 행복하게 느껴졌죠. ‘역린’은 저에게 남다른 느낌을 준 작품이에요.”
어떠한 일을 동시에 진행하지 못한다던 현빈은 ‘역린’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일명 ‘화난 등근육’이라 불리는 그의 근육질 몸매도 꾸준한 운동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얻은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공을 함께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돌렸다.
“첫 사극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선배님들의 역량이 엄청 크죠. 좋은 배우 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과 한 작품을 함께 한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역린’은 군대 안에 있을 때 눌려 있었던 많은 생각들을 처음으로 오픈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남다른 작품이에요.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된 부분도 있고 더욱 욕심이 생기는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다음 작품으로 사극을 선택하진 않을 것 같아요. 반면에 좋은 작품이 들어오거나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래도 정조는 안하겠죠.(웃음)”

지금까지 현빈이 작품을 통해 보여줬던 모습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배우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그에게 앞으로의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었다.
“아직도 안 해본 장르, 캐릭터들이 많아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모습은 소수이자 일부분이라 생각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 안에서는 모두 다 도전해보고 싶어요. 내공이 더 쌓이고 연기에 대한 여유가 더욱 많이 생긴다면 이중인격자 캐릭터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차도남이요? 집에 있는 트레이닝복을 다시 꺼내야 하나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튀어나온 현빈의 농담에 웃음의 여유를 가지며, 그에게 있어 ‘역린’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저에게 있어 ‘역린’은 어렸을 때 즐겨먹었던 종합사탕 같은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도 얻고 개인적인 행복도 얻는 등 다양하게 얻은 게 많아요. 영화 촬영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저한테도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얻었던 것 같아요. 관객 분들에게도 이러한 메시지가 잘 전달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현빈의 바람대로 ‘역린’은 34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에 있다. 그의 바람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또한 그는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