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개봉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비탄에 빠진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왔다. 현실의 시름을 잠시나마 달래줄 오락영화가 득세할 것으로 전망됐다.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웃음기 하나 없는 ‘명량’의 묵직한 돌직구가 통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병언 도주극 등 일련의 사건에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사회 지도층에 염증을 느끼면서, 그 분노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을 싹트게 했다. 그 시점에서 이순신 장군이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스크린 속 이순신 장군은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리더십을 보인다. 아랫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앞서 자신의 목숨부터 내놓을 각오로 결전에 임했다. 그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군은 사기를 충전할 수 있었다. 대열을 이탈한 수군에는 인정에 이끌리지 않고 이순신 자신의 입으로 말한 원칙에 맞게 일벌백계했다. 61분의 해상전에서 역시 리더로서의 과감한 추진력과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줬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도 잃지 않는다. 수군들 앞에선 위엄을 잃지 않지만 홀로 있을 땐 과거 전장에서 스러진 동료들의 망령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전장에서 아비를 잃은 청년에게 연민을 느끼며 ‘아빠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명량’이 1000만에 가까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인물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명량’은 기적의 신화가 필요한 시점에 ‘기적’에 가까운 승리담(명량해전)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염원에 부응한다. 동시에 영화는 이순신 장군과 수군 외에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목탁 대신 창을 든 승려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노를 저었던 인부들, 육지에서 힘을 보탠 민초들, 이들이 한 데 뭉쳐 승리하는 과정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이 아닌 전 민중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인과 역사적 사건을 뛰어넘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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