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해운대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은 헛웃음을 부른다. 에피소드가 작위적이다보니 ‘소동을 위한 소동’처럼 보이는 탓이다.
충동적으로 부산 해운대에 놀러 온 세 친구는, 뜻하지 않게 이런저런 사고를 치며 쫓겨다닌다. 도망자 신세가 된 주인공들보다 불쌍한 건 이들의 부주의함에 봉변 당하는 비키니 여성들. 발바닥에 유리가 박혔다고 별안간 비키니 여성의 가슴 위로 쓰러지질 않나, 도주하다가 비키니 여성의 상의를 벗기는 실수를 저지르질 않나…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민망한 에피소드는 이어진다. 민폐를 끼치며 도주하는 이들 뒤를 피서객들이 따라붙어 거대한 행렬을 이룬다. 동네 잡상인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약 조직원이라는 이들까지 사소한 오해로 주인공들의 뒤를 쫓는다. 이 거대한 인파가 만드는 소동극은 오래된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관객 입장에선 주인공들도, 이들을 쫓아가는 조직원들과 피서객들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
‘쓰리 썸머 나잇’은 찌질한 세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영화 ‘스물’을 떠올리게도 한다. 소위 ‘병맛’으로 불리는 유머 코드도 닮았다. 그런데 캐릭터 구축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따라 그 재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스물’의 경우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캐릭터가 극을 끌고 간다. 반면 ‘쓰리 썸머 나잇’의 인물들은 정신없이 벌어지는 사건에 휩쓸려갈 뿐이다. 엄친딸 여자친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남자, 비아그라를 팔면서 정작 자신의 성 생활 문제는 어쩌지 못하는 남자,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것이 삶의 낙인 남자, 이것이 세 주인공을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게 뼛속까지 찌질하게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공감이나 연민이 갈 만한 캐릭터 묘사도 부족하다. 주어진 캐릭터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배우들을 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파안대소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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