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한 외화만 1400편…그 영화속에 있고 싶었던 남자

젊은 시절의 조상구(61)는 펄떡이는 활어 같았다. 살아 움직이는 눈빛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했다. ‘배우는 눈으로 말한다’는데 그 눈빛엔 도시의 음울함과 밑바닥 인생의 고단함이, 세상을 향한 독기가 가득했다.

‘청춘들의 영웅’이었던 까치(그는 죽마고우 이현세가 그린 까치의 실제모델이다)는 ‘남성들의 판타지’인 시라소니(SBS 야인시대)로 이어졌다. “까치가 10~20년이 지나 시라소니가 됐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게 배우로서의 조상구지.”

‘고독한 호랑이’의 얼굴을 담았던 조상구는 이후로도 수십편의 작품을 만났다. 사극과 현대극을 아우르며 존재감을 발했다. “시라소니 이후로 글쎄 뭐. 보여줄 만한 걸 보여준 적이 없네요.” 스스로는 그렇게 말한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초복날, 때마침 ‘징비록’(KBS1)의 촬영 스케줄이 비었다. 서울 청담동의 한 복집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 마누라도 사줘야 하는데. 나만 먹으니 미안한데…” 36년간 배우이고, 19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외화번역가였던 삶, 그리고 한 가정의 가정으로서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창시절엔 언제나 주인공으로 살았던 그는 배우의 길로 접어들며 가시밭길을 걸었다. 1979년 영화 ‘병태와 영자’로 데뷔했지만 얼굴을 알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물여섯에 아내와 결혼하고 극단 생활을 하는 동안 조상구는 7년간 앓아누웠다. 극단에서만 4명이 앓았다는 흔하디 흔한 폐병이었다.

7년 만에 찾아온 작품에서 조상구는 지금의 이름을 만나게 됐다. 그의 본명은 최재현이다. “현세 때문이죠. 그 땐 만화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별들의 고향’을 만든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든대. 원작료도 500만원을 준대. ‘와, 이 새X 출세했네’ 그랬죠.”

‘외인구단’(1986)의 오디션 소식을 듣고, 조상구는 죽마고우이자 영화의 원작자인 이현세에게 자신을 추천하라고 옆구리를 찔렀다. “현세가 없었으면 될 수 없었죠. 울며 겨자먹기로 나를 쓴거야.”

영화에서 그는 손가락 부상으로 마동탁의 피칭머신을 해주는 ‘비운의 투수’ 조상구를 연기였다. 연습장에 찾아온 아들과 친구들 앞에서 마동탁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한다. 외인구단에 합류하며 마동탁을 상대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인생 역전 스토리를 쓴다. “내 처지랑 참 닮았더라고. 우리 아들은 내가 배우라는 걸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너네 아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해도 말하지 않더라고.” 아빠의 마음으로 연기했던 조상구를 만난 이후 ‘외인구단’ 속 캐릭터는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됐다.

이듬해 ‘지옥의 링’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회색도시’(1989)를 통해 직업인으로서의 연기자의 삶에 조금 더 깊이 들어섰다. 2002년 ‘야인시대’ 속 시라소니는 조상구의 치열한 연구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시라소니를 다 무시하겠다고 했죠. 올빽 대신 헝크러진 머리를 했고, 양복 대신 전투복을 입었죠. 이북사투리를 쓰고, 수염을 길러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36년째 이 길을 걷지만 조상구가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공은 한결같다. ‘징비록’의 마에다 토시이에를 만들기 위해 일본영화 100여편을 찾아봤다. 뒤늦게 투입됐기에, 앞서 자리잡은 배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판단이었다. 악을 쓰고, 살기에 휩싸인 일본장수들 틈에서 조상구는 차분히 목소리를 낮춘다.

배우로서의 열정은 여전한데, 조상구에게 전환점은 이미 20년 전 찾아왔다. “나른한 봄날이었어.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 아무 이유도 없었어요. 그 때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구나, 내 식구들을 편하게 먹여살리기 위해 달려온 과정이고 수단이었구나. 그게 깨달음처럼 왔어요. 그 때가 아마 마흔셋, 마흔넷 정도였어요.” 그 날 이후 조상구는 “독기와 음울함이 사라졌다”는 말을 주로 들었다.

인생에 남을 만한 작품을 몇 편 만났다고 생계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조상구는 “먹고 살기 위해” 번역일을 시작했다. 1987년 비디오 데크가 출시되며 미개봉 외화가 비디오로 물 밀듯이 쏟아지던 때였고, 영화 ‘회색도시’를 촬영할 당시였다.

그가 번역한 영화는 무려 1400여편, ‘레옹’, ‘LA컨피덴셜’, ‘타이타닉’, ‘밀리언달러베이비’, ‘무간도’, ‘로미오와 줄리엣’, ‘제5원소’ 등 대한민국을 강타한 블록버스터는 물론 예술영화, 홍콩영화 할 것 없이 조상구, 아니 최재현의 손을 거쳤다. 평균 이틀에 한 편씩 ‘자수와의 전쟁’을 벌이던 그는 업계에선 빠르게 일등 번역가가 됐다. 20만원으로 시작했던 번역료는 ‘타이타닉’에서 250만원으로 뛰었다.

“19년 동안 가족을 먹여살린 분신같은 존재였는데, 전 번역이 싫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난 저 안에 들어가고 싶은 건데 번역을 하고 있는 내 꼬라지가 얼마나 비참해.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죠.”

배우는 한 때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삶이었으나, 지금 그에겐 가족이 첫 번째다. “가족이 아니라면 배우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배우도 막상 일에 들어가면 평범한 직업인이에요. 어떤 배우로 남고 싶다는 건 없어요. 우리 아내, 두 아들이 괜찮은 배우였다고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좋아요. 근데 그게 객관성은 있어야지. 조상구가 누구야? 이러면 안되잖아.”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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