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만나·기획사 업고…연기자는 ‘금수저’ 물고 태어난다?

지상파·케이블 年 100여편 드라마 제작
1만여 연기 지망생들 오디션 별따기

조재현 딸 조혜정 ‘처음이라서’캐스팅
‘아빠를 부탁해’가 날개 달아준 모양새
같은 소속사 주연급-신인배우 ‘패키지’

모든 지망생 PD앞에서 연기 기회
드라마제작사協, 연기자 선발 무대 마련

연기자 지망생과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신인들이 데뷔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배우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도 부족한데, 그나마 찾아온 기회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연예인 부모와의 TV 출연(조혜정ㆍ왼쪽)으로 인지도를 쌓거나 주연급 배우와 함께 패키지로 출연하는 신인배우(박혜수ㆍ오른쪽)들이 그 사례다.

서울 모 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연기자 지망생 이모 씨(24ㆍ여)는 소속사가 없다. 직접 프로필을 만들어 오디션을 보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사실 오디션 일정을 재빠르게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알음알음 소속사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포기하려다가도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절박함이 발목을 잡는다. 

“워낙에 연기자 지망생이 많아요. 저처럼 소속사가 없는 지망생은 오디션을 볼 기회도 흔치 않고요. 소속사 오디션을 보기엔 신인으로 치면 나이도 많고요. 같은 오디션에 아이돌이 경쟁자라면 당연히 인지도에서 밀리죠. 제가 너무 꿈을 늦게 꾼걸까요?”

드라마 시장에선 20대 배우가 기근이라는데 정작 20대 연기자 지망생이나 신인들의 삶은 쉽지가 않다. 단역으로라도 얼굴을 비추고픈 지망생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현재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을 기준으로 지망생은 약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휴학생까지 환산하면 2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해마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아울러 100여편의 드라마가 제작되는 데도 이들이 설 땅은 지나치게 좁다. “대형 가요기획사에선 아이돌 연습생을 뽑지만 대학생이 되면 아이돌로 지원하기엔 늦은 나이다. 배우로 지원할 수 있는 소속사는 많지 않고, 배우로서는 역량을 발휘할 장이 없는 것도 현실”(박상주 국장)이라고 한다. “겉멋에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지만 절박하게 달려가는 쪽도 적지 않다. 기획사마다 데뷔작 하나 가지지 못한 신인도 참 많다. 가뜩이나 흔치 않은데, 그나마 찾아온 기회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 기회 불평등 1. 연예인 자녀의 무임승차=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배우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배우 지망생이다. 출연작은 단역으로 얼굴을 비춘 케이블 채널 OCN ‘신의 퀴즈’다.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혜정은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는 모습으로 시청자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오는 10월 방송되는 온스타일 드라마 ‘처음이라서’에 캐스팅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시선들이 곱지 않다. 캐스팅 기사에 달린 악플에 조혜정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정정당당히 오디션 3차까지 보고 역할을 하나 맡게 됐다. 이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항변했다. 

드라마 PD도 나섰다. ‘처음이라서’의 연출을 맡은 이정효 PD는 “혜정이는 당당히 오디션으로 붙은게 맞다. 김지연 피디(CJ 제작PD)가 ‘아빠를 부탁해’에 나오는 혜정 양의 실제 모습을 저에게 추천해 주신거고, 전 그런 혜정이의 모습을 조금 다듬어 정현정 작가의 ‘오가린’을 덧입힌 것”이라고 SNS에 긴 글을 남겼다. 결국 ‘아빠를 부탁해’가 조혜정이라는 신인 연기자에게 날개를 달아준 모양새가 됐다.

프로그램 시작 당시부터 연예인 자녀의 데뷔 프로젝트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나왔던 ‘아빠를 부탁해’는 결국 발목을 잡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프로그램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입장과 둘의 관계만을 다뤘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에선 프로그램 자체의 정체성과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며 “프로그램이 하나의 교두보처럼 돼서 인지도를 이용해 기회를 얻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상주 국장 또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 아빠와 이슈가 되고, 자녀가 배우로 성장하는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지 않은 입장에선 “순수하게 연기공부를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데 자존감이 무너지고 상실감이 커질 수 밖에”(신인 연기자 박모 씨) 없다. 똑같은 장거리 마라톤이라도 출발선이 다르다면 그것은 불공정 게임인 셈이다.

▶ 기회 불평등 2. “A급 배우 쓰세요. 대신 생짜 신인도…” 끼워팔기=연기자의 세계엔 해묵은 업계 관행이 만연한다. 

연예 기획사에선 주연급 스타와 검증되지 않은 신인들을 조연급으로 같은 작품에 출연시킨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패키지’라고 부른다. ‘원 플러스 원’, 소위 말하는 ‘끼워팔기’다. 

이 같은 사례가 숱하다. 종영작만 놓고 보면 ‘하이드 지킬 나’(SBS) 현빈-ooo, ‘삼총사’(tvN) 이진욱-ooo, ‘떴다 패밀리’(SBS) 진이한-ooo은 물론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용팔이’(SBS)에도 주원과 ooo가 함께 나온다. 물론 같은 소속사의 배우들이 한 작품에 출연했다고 ‘끼워팔기’로 단정할 순 없다. 누구도 ‘끼워팔기’라고 대놓고 인정하진 않는다. 

다만 업계의 반응이 흥미롭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끼워팔기는 어쩔 수 없는 매니지먼트의 마케팅 방법이자 관행”이며 “그것 역시 매니지먼트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편성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 편성권을 따기 위해 스타배우를 캐스팅하는 제작사가 먼저 협상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캐스팅이 어려운 A급 배우를 언급하며 “이 작품에 OOO줘. 신인배우 하나 넣어줄게” 라는 식이다.

연예기획사에선 때문에 ‘A급배우’를 애타게 찾는다. 한 대형기획사의 매니지먼트 팀장은 “소규모 기획사들이 얼굴마담격 아티스트 영입에 혈안이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A급배우로 회사 운영비를 확보하고, 네임밸류를 올려 양질의 신인을 함께 띄운다”는 것이다. 

‘끼워팔기’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연기 초보 신인도 숱하다. 실력과 인지도는 비슷한 수준인데 기획사의 이름이나 소속 연기자의 등급이 신인들의 미래도 좌우한다. ‘관행’이라며 체념하지만, 업계에서도 우려와 개선의 목소리는 나온다.

배우 위주로 소속된 연예기획사의 고위 관계자는 “연기가 아닌 다른 부분으로 캐스팅을 진행한다는 것은 소속사를 하는 사람으로서도 불편하고 아쉬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연기력이나 대중성을 인정받는다면 박수를 쳐줄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얻고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고 검증받지 못 한다면 활동하지 않는 신인들보다 향후 리스크가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기획사 관계자도 “‘끼워팔기’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만이 길은 아니”라며 “신인연기자를 잘 다듬어 그 아이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무임승차ㆍ끼워팔기 사절…“기회를 드립니다. 실력만 보고”=월등히 실력이 떨어져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도 아니다. 숱한 연기자 지망생은 뒤늦게 꿈을 꾼 자신을 탓하지만, 업계의 벽은 생각 이상으로 높다. 물론 연예기획사에서도 새 얼굴을 찾는다. 문제는 ”당장의 전력감이 있는 지망생 위주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모델 활동 경력이 있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신인으로다.

소속사에서 데뷔를 기다리는 신인들은 집안싸움 중이다. 신인배우가 유달리 많이 소속된 한 배우 기획사에선 “오디션 하나가 나오면 우루루 몰려가니 가족끼리 밥그릇 싸움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보다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례에 비한다면 “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박상주 국장)라는 이야기도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속사가 있는 신인들의 경우 “매니지먼트의 역량과 본인의 재능과 매력”이 어우러질 때 길이 열린다. 다만 도전할 기회에 대한 정보조차 알지 못하는 지망생들은 더 어렵다. 이들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는 장이 생겼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진행하는 드라마 연기자 선발대회다. 박상주 국장은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점에 발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한정된 기회와 정보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연기자 지망생들에게 그 장을 제공하고자 했다”며 “서류심사는 하지만 외모를 우선하진 않는다. 모든 참가자가 PD 앞에서 연기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업계의 여러 현실과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본인이 가진 역량만 놓고 기회를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sh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