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음악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돈에 여유가 있어서 앨범 낸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사실과 다르거든요. 제가 한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때마다 속상하죠.” 낮에는 진료를 보고, 밤에는 곡 작업을 한다. 앨범을 내기 위해 받은 대출도 만만치 않다. “제 빚 액수를 들으면 놀라실 거예요. 결코 음악을 편히 하고 있는게 아니랍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밴드 화접몽의 보컬 오철을 만났다. 근처에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의원이 있었다. 한의원 점심 시간을 쪼개 밥 대신 인터뷰를 택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다는데 밥이 대수인가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화접몽 밴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기자도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박애리 ‘쑥대머리’…작사, 작곡한 것만 100여 곡= 밴드 화접몽은 정규 3집까지 낸 팝 재즈 밴드다. “어지간히도 안 떴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래도 가장 유명한 곡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박애리의 ‘쑥대머리’를 편곡한 주인공이 바로 오철이였다.
“국악 뮤지컬 음악감독을 했었는데, 그때 국립창극단 프리 마돈나였던 박애리 씨가 ‘쑥대머리’를 불어요. 뮤지컬은 망했는데 박애리 씨의 ‘쑥대머리’는 떴죠. (웃음)”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편곡한 박애리의 ‘쑥대머리’는 작년 말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3’에서 사과아가씨 이윤아가 불러 화제가 됐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원곡을 찾아 듣는 통에 음원 차트에 등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통장 잔고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매달 30만 원 정도 들어오던 저작권료가 갑자기 200만 원씩 들어왔어요.” 자랑을 하나 더 얹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국악계에서는 이 노래가 정말 잘 된 편곡이라고 말해요. 앞으로 이런 곡은 없을 거라고. 근데 그게 부담이 돼서 이제 그런 곡을 못 쓰겠더라고요.”
오철이 저작권협회에 등록한 곡은 약 100여 곡, 그 중 ‘쑥대머리’가 가장 큰 수확을 안겨줬다. 현재 몸담은 화접몽 밴드에서도 모두 오철이 작사, 작곡을 도맡아 한다.
▶록밴드-해금-재즈 밴드, 지금 현재는 ‘재즈’= 음악을 전공한 적도 없는 한의사가 어떻게 작사, 작곡에 재즈 밴드까지 시작하게 됐을까.
중학교 때부터 치던 기타, 언젠가 음악을 하겠다고 맘먹은 계기였다. 한의대에 진학했고, 이제는 음악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처음 시작은 록밴드였어요. 그 때는 밴드라고 하면 록밴드 밖에 없었거든요.” 이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보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문득 회의가 들었다. “카피 밴드 하는 게 싫었어요. 남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죠. 그때부터 혼자 작사, 작곡을 하기 시작했어요.” 작곡 책을 사서 자취방에서 독학을 했다.

그가 작사, 작곡한 앨범 CD를 건네 들었다. 재즈 밴드 소리에 정체불명의 소리가 얹어졌다. “해금이에요.” 밑도 끝도 없었다. “군대에서 해금을 배웠어요. 딱 맞는 시간이 해금 수업밖에 없었어요. 첫날 국악 앨범을 하나 샀는데 해금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 그것과 똑같은 소리를 내려고 열심히 배웠죠.”
이때부터 국악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쑥대머리’를 편곡하고 국악 뮤지컬 음악감독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제 음악 안 한다고 했어요. 뮤지컬 음악 감독을 했을 때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도 음악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재즈는 오철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원래 완벽주의가 굉장히 심했어요. 제가 생각한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고쳤죠. 그런데 재즈를 하고 나서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없어졌어요. 재즈는 정답이란 게 없으니까요.”
▶결국, 답은 ‘국악’… 하고 싶은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거쳤지만 오철에게 록, 국악, 재즈, 이렇게 “장르를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했다. “록이 충동적인 강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재즈가 어렵지만도 않아요. 또 국악이 졸리지만은 않거든요. 어차피 음악이라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해석해요.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게 장르라는 게 있어야 하지만 음악을 장르로 얽맨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한의사, 재즈 밴드 보컬, 국악 편곡자. 그를 어떤 ‘장르’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답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인터뷰 내내 국악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수년 선생님의 ‘아리랑’을 한번 들어보시면 알 거예요. 이렇게 우리나라 ‘아리랑’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장르를 떠나 “어렵지만 쉬운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쉽게 듣고 따라부를 수 있지만, 우리 아니면 못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숙제는 “대중성”이다. “우리 밴드가 사람들이 정말 많은 무대에서 공연을 올리게 해주고 싶어요. 이제 제 만족을 위한 음악만 고집하지 않으려고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있는 건 “국악”이었다. “국악에 대한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해금이란 악기를 잘 몰랐는데도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60이 넘어가서도 오철이 음악을 하고 있다면 국악, 재즈, 록 중에 국악은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국악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있어요. 제가 하는 음악에 계속 국악을 넣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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