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라인서 국가별 모델 생산하는 유연성
각종 부품 이동·고난도 작업 로봇이 전담
4만대 적재 가능 창고, 물량 확보에 대비
공장 증설 통해 연 439만대 생산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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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코허브 생산라인에 배치된 로봇들이 완성된 제품을 꼼꼼하게 포장하고 있다. [경동나비엔 제공] |
경기도 평택. 산업단지가 이어지는 길 끝에서 만난 경동나비엔의 보일러 공장 ‘에코허브(Eco Hub, 옛 서탄공장)’는 첫인상부터 예상과 달랐다. 공장이라면 으레 떠올리는 기름 냄새나 자재 더미, 분주히 오가는 지게차의 소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시야에 들어온 것은 비워진 바닥과 정돈된 공간,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기계들의 흐름이었다.
공장 바닥에는 자재가 놓여 있지 않았다. 볼트 하나, 부품 하나 무심코 떨어져 있는 모습도 없었다. 필요한 부품들은 모두 선반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채, 다음 공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동을 맡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바닥에 그어진 실선을 따라 ‘AGV(Automated Guided Vehicle)’가 쉼 없이 움직였다. 차체 위에 부품 박스를 올린 채, 마치 약속된 동선을 아는 듯 정확하게 공정 위치로 향했다. 한눈에 봐도 수십 대는 족히 돼 보이는 AGV들은 프로그램된 경로를 따라 공장을 누비며 부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로봇들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기계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즉시 멈추는 등 충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높이 역시 사람 허리 아래 수준으로 낮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했다. 현장 관계자는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안전 설계가 가장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자동화는 효율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전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에코허브 내부에서 가장 강하게 인식되는 것은 ‘소리’였다. 라인마다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쉬이익’ 하는 소음. 처음엔 단순한 기계음처럼 들리지만, 그 소리는 이 공장의 품질 기준을 상징하는 신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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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단계에 들어선 보일러는 검사 공정을 거친다. 누수는 없는지, 용접은 완벽한지, 고온·고압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하나하나 점검한다. 이를 위해 보일러 내부에 물을 주입한 뒤, 고온·고압 상태를 만들고, 검사 장비와 작업자의 눈과 귀를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검사 후 내부의 뜨거운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과정에서 ‘쉬이익’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
검사 장비 역시 자동화돼 있다. 덮개 형태의 검사 장비가 보일러 내부로 밀려 들어가 부위별 점검을 수행한다. 고열과 고압을 견디는지 확인한 뒤, 이상이 없으면 물을 빼내고 다음 검사 라인으로 이동한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약 4분.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이 검사 장비는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직접 개발한 설비”라며 “작업자 1인당 2대씩 배치돼 효율이 크게 올라갔다. 향후 추가 배치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라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에코허브 공장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바로 ‘유연성’이다. 이 공장은 특정 제품만을 고정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생산 계획에 따라 언제든 제품 믹스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오늘은 한국에서 주력으로 판매되는 보일러를 만들다가, 다음 날에는 미국 시장에서 주로 쓰이는 제품을 같은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다. 현장 관계자는 “제품이 바뀌어도 작업자가 이동할 필요가 없다”며 “같은 공간, 같은 라인에서 필요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고난도 작업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 투입된다. 볼트와 너트 체결이 많고 정밀도가 요구되는 공정은 로봇이 맡는다. 대신 사람과 로봇의 작업 공간은 명확히 분리돼 있었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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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이 끝난 보일러는 ‘사이드 비전 검사’ 공정으로 이동한다. 로봇이 직접 내부를 촬영해 불량 여부를 판별한다. 작은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보완 공정으로 되돌아간다. 검사를 모두 마친 제품에는 바코드가 부착되고, 이후 2층 분류 센터로 올라간다. 생산과 검사의 모든 이력이 데이터로 남는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공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창고동이다. 에코허브 2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파트 10층 높이를 훌쩍 넘는 약 30미터 높이의 거대한 창고동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퍼레이터를 제외하면 내부는 사실상 무인 공간에 가까웠다. 생산이 끝난 보일러는 파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인 뒤, 자동화 설비를 통해 창고로 이동한다.
언제 생산된 제품인지, 어느 라인에서 만들어졌는지도 모두 기록된다. 현장 관계자는 “파레타이징된 제품은 창고동에 보관됐다가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외부로 반출된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원칙이 글로벌 납기 신뢰도를 떠받치고 있었다. 패키징 공정 역시 자동화의 연속이다.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은 10여대 또는 20여대씩 박스로 묶은 뒤, 비닐로 한 번 더 감싸 파손을 방지한다. 파레트에 실린 제품들은 레일을 따라 거대한 창고동 깊숙이 이동한다.
보일러는 계절성이 강한 제품이다. 통상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성수기다. 이 시기를 대비하려면 비수기 동안 충분한 물량을 미리 생산해 쌓아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된지 오래된 제품 부터 출고가 먼저 이뤄져야 보관 기간 장기화에 따른 제품 가치 하락에 대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에코허브의 경쟁력이 ‘창고동’에서 나온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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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관계자는 “이 창고동에는 약 4만 대의 보일러를 보관할 수 있다”며 “향후 공장이 증설될 경우 생산 시설뿐 아니라 창고동 확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공장’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공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세계 47개국으로 나가는 보일러의 심장’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화, 유연성, 안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재고 관리까지. 이 모든 요소가 맞물려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었다. 에코허브는 단순한 제조 공간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된 하나의 플랫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경동나비엔은 현재 4만평 부지에 연간 20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에코허브’를 10만평 부지에 연간 439만대까지 생산능력을 가진 공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기술까지 적용한 ‘스마트 팩토리’로 변화시켜 경동나비엔의 혁신을 이끄는 전초 기지 역할을 맡게하겠다는 구상이다.
평택=홍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