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TV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글로벌 TV 시장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리더 교체로 조직 혁신에 박차를 가한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정규 인사 시즌이 아닌 시점에 그것도 한 사업부에 대한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현재 노동조합이 파업을 인질로 성과급 협상을 놓고 회사와의 대치를 지속하면서 DS(반도체)·DX(완제품) 부문 구성원간 갈등까지 증폭되고 있는데, 이번 인사로 반도체 외 사업부서는 생존이 달려 있는 위중한 시기라는 점을 절박함을 담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4일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고 있는 이원진 사장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겸 서비스 비즈니스팀장으로, 기존 용석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보좌역으로 선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수요 둔화에 원자잿값 및 물류비 상승까지 겹치며 실적이 악화하면서 새로운 수장 선임을 통해 전격적인 쇄신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원진 사장은 구글 출신의 콘텐츠·서비스 및 마케팅 전문가로 삼성전자 TV, 모바일 서비스 사업의 핵심 기반을 구축하고 글로벌 사업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를 통해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리더십을 입증했다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비즈니스 턴어라운드를 주도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등 TV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소방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DX 부문장 보좌역으로 위촉된 용석우 사장은 연구개발(R&D) 전문성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AI, 로봇 등 세트(완제품) 사업 전반의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자문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인사가 21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에 대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부 수장까지 바꿔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노조의 강경 기조로 회사의 대외 경쟁력이 훼손될 뿐 아니라 내부 단결력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반도체 부문과 모바일·가전 등 비(非)반도체 부문 간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노조 탈퇴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조합원들의 탈퇴 신청 건수는 하루 1000건을 넘어서며 ‘엑소더스(탈출)’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열흘간 누적 2500건을 넘어서며 초기업노조 창립 이래 유례없는 대규모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역대급 성과를 내고 있는 DS부문에서 ‘왜 나머지와 이익을 나눠가져야 하냐’는 불만을 내비치자 세트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 조합원들이 노조 탈퇴에 나서며 노노(勞勞)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앞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한 이유에 대해 “종합반도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적자 사업부인 DS부문 소속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에는 노조가 적극 나서 성과급을 챙겨주려는 것에 반해 DX부문 언급은 없었다는 점이 DX 임직원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초기업노조에 가입한 7만5000명 중 약 80% 이상은 DS부문 소속이다. DS부문의 초기업노조 가입률은 80% 수준이지만 DX부문은 30%에 불과하다.
최근 초기업노조가 파업 기간 15일 이상 활동하면 수당 30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스태프 모집에 나선 것도 쟁의 기간 조합비 인상(1만원→5만원)과 맞물려 노노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여기에 최근 DX부문의 수익성 저하에 따른 사업 축소와 인력 재편 가능성이 가시화하면서 내부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노조가 실적이 좋은 DS부문만을 위한 과도한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을 두고 강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DX부문의 한 임직원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삼성전자는) 부품 만드는 사업부(DS부문)와 부품으로 세트를 만드는 사업부(DX부문)를 합쳐서 종합회사 아닌가”라며 “여태껏 세트 부문에서 이익이 나면 적자를 본 부품 사업부에 몇 십조씩 투자를 해주지 않았나. 근데 시황이 나아지면서는 특정 사업부 덕분이라며 노조 가입해서 자기들 성과급 확보하는데 일조하라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단기 실적에서 벗어나 향후 기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와 미래 먹거리 개발까지 고려한 노사 교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기 사이클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노사 협상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호황기 성과만을 기준으로 보상을 요구하기보다 불황기까지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일·박지영 기자




